A씨는 “5월 말에 전세 계약을 마친 뒤 갑자기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같은 조건 아파트의 전셋값이 2억원 가까이 뛰었다”며 “집주인 입장에서는 싸게 전세 계약을 해줬다고 판단해 집수리를 안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해당 집을 5월 말 7억 8000만원에 계약했는데, 임대차 3법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8월 이후 매물 전셋값은 9억 5000만원을 넘은 상황이다. 약 1억 7000만원이 껑충 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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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세를 놓기 위해 집안을 새단장한 ‘올수리 집’이 사라지고 있다. 전세매물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세입자를 구하는 집주인이 집수리를 뒤로 미루는 경우가 늘고있다. “어차피 급한 건 세입자라 낡은 집도 계약이 수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심지어 입주가 이뤄진 뒤 집수리를 세입자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2년 계약 갱신·인상률 제한 등을 담은 임대차 3법에 대한 불만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식이다. 오히려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포기하게 하는 게 이득이라는 심리도 깔려있다.
◇“어차피 집수리 안해도 전세 잘 나간다”…전세난에 콧대 높아진 집주인
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집주인이 “세입자들을 위한 집수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한 이용자는 “세입자가 집 상태에 대해 불만이 있다. 장판·벽지 교체와 화장실 수리 등을 요구한다”는 게시글을 올리자 답글에는 “해줄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대표적으로 ‘세입자 구하기 쉬운데 뭐하러 해주냐’·‘요즘같이 전세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세입자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요즘 같은 때에 누가 세입자 말을 들어주냐’는 등의 대답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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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임대차 3법으로 전세 수요가 커지고 그에 따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라며 “결국 세입자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집주인 우위’ 시장이 탄생했다”고 분석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8월(1일~30일) 서울에서 체결된 아파트 전월세 임대차 계약은 총 6078건으로, 전월과 비교해 47.6% 감소했다. 추가 신고될 가능성을 감안해도 1만건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관련 통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임대차 거래가 월 1만건 아래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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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계에 따르면 세입자들도 집을 보지 않고 전세 계약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동구 옥수동 리버젠 아파트의 경우 전세 매물이 나올 시 집을 보지 않고 즉각 계약금을 입금하겠다는 예약자까지 있을 정도다. 1500가구가 넘는 성동구 대장주 아파트지만 지난 1일 기준 전세 매물은 단 3개에 불과할 정도로 매물이 귀한 단지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은 집도 안보고 전세계약을 한다”며 “집수리 여부는 세입자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해당 공인중개업소는 지난달 말 인근 옥수극동아파트의 전세 계약도 세입자의 ‘집 점검’ 없이 성사시켰다.
다만 집 주인들이 정당한 세입자들의 집 수리 요구를 무시할 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신효의 오세정 변호사는 “판례에 따르면 누수 등 생활에 위해 크게 피해가 가는 수리를 해야하는 의무가 집주인에게 있다”며 “세부적으로 따져봐야겠지만 곰팡이, 도배, 장판 등 손상 범위에 따라서도 집주인의 수리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 같은 의무를 집주인이 무시할 시 세입자는 집주인을 상대로 소송도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