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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지난달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이징시 다싱 신젠촌에서 섬유공장 노동자들이 사는 임대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했다. 말이 아파트일 뿐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생활을 하기 위해 허술하게 올린 건물에 불과한 곳이었다. 이렇다 할 창문 하나 없는 건물로 불은 순식간에 번져 어린이를 포함한 19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 베이징시는 안전 강화 조치를 내세우며 이 같은 불법 증축 건물에 철거 통보를 시작했다.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불법 증축 건물을 없애겠다는 게 시 당국의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저소득층 노동자, 농민공들을 퇴거시키겠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철거 대상자의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베이징 각지에서 10만명 이상이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철거 방식 역시 강압적이었다. 한겨울에 갑자기 전기나 물을 끊고 한밤중에 집을 부수기도 했다. 이 모습이 온라인을 통해 전해지며 중국 내에서는 비난 여론이 커지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간에 쫓겨나는 농민공들이 일파만파로 늘어나며 일각에서는 베이징시가 인구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화재라는 비극을 도구로 삼았다고 비난했다.
베이징시의 상주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2173만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는 전년 동기보다 2만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베이징은 인구 증가폭을 줄여 2020년께 시 인구 230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하이 역시 2016년 말 인구 2420만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인구가 4만명 늘어나는 데 머무르고 있다. 생활환경 악화와 교통 체증 등을 막기 위해 도시 유입을 억제하는 것이 이들 1선 도시들의 목표다. 그러다 보니 화재와 안전문제를 명분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공들을 쫓아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사회학자인 순리핑 칭화대 교수나 역사학자 장리판 등 100여 명의 지식인들은 공산당에 철거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일부 시민들은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임시숙소를 제공하고 이삿짐 운반을 지원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베이징시의 가혹한 조치에 분노하는 여론으로 도배됐다.
게다가 이 조치는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 중 하나인 전자상거래 택배 물류 산업까지 위협하며 산업 문제로까지 떠올랐다. 퇴거명령을 받은저소득층 노동자 상당수가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강 중국 전자상거래협회 물류전문가는 “많은 택배기사가 퇴거 명령을 받고 있다”며 “물류 부문 임금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화재 안전 기준에 미달한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물류창고 및 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베이징 곳곳에서 택배 일시 중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 대형 물류서비스센터인 SF익스프레스는 유통센터 20곳이 폐쇄됐다고 전했다.
비판 여론이 커지고 사회·산업적 문제까지 우려되자 차이치 베이징 시장는 최근 간부회의에서 “퇴거 조치를 성급하게 하지 말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사회를 달성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진짜 중국 사회의 민낯이 이번 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