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46)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예고했던 ‘대반격’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서방의 추가 지원을 끌어내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반면 서방의 거센 비판과 압력에도 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스트롱맨’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우크라 전쟁이 3년차에 접어들며 예상보다 길어지자 국내외 피로감이 누적되는 가운데 양국 대통령 모두 리더십의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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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시작한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2주년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초음속 장거리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160M을 직접 타고 비행하며 핵전력을 과시했다. 최대 속도는 마하 2로 러시아 언론은 군용기 역대 가장 큰 초음속 항공기이자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전투기라고 설명했다. 이날 특별 비행복을 입고 비행을 마친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세대의 항공기로 군사적 능력이 매우 좋다”고 극찬하며, 군에 도입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핵전력을 자랑했다. 최근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힌 반정부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연치 않은 사망으로 서방의 거센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보란 듯이 서방에 군사 성과를 과시한 것.
푸틴 대통령은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위해 이런 방법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여러 차례 카마즈 트럭을 직접 운전했으며, 수륙양용 차량을 운전하거나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웃통을 벗고 말을 타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양측 전선은 지난 몇 달 동안 교착 상태에 있었으나 최근 러시아로 기세가 기운 모습이다. 러시아는 지난 17일 격전지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했다고 발표하는 등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내달 15~17일 열리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마땅한 대항마가 없는 상황에서 ‘어대푸(어차피 대통령은 푸틴)’로 사실상 독무대가 펼쳐질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의 당선은 확실시되면서 내부 지지 기반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 집권 5기를 열며 2030년까지 정권을 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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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대통령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단정한 양복 차림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르다. 양복 대신 전투복을 입고 항전의지를 밝힌 모습에 그는 일약 전쟁 영웅이자 국제적 지도자로 부상했다. 202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투혼’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제 양복보다 전투복이 익숙해져버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잊혀지는 것이다. 지난해 10월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에 밀려 국제사회의 관심도에서 한참 멀어져 있다. 전쟁의 장기화로 국제사회의 피로감과 무관심이 커져 최대 우방국인 미국의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고군분투 중이다. 미국 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처리는 공화당 강경파의 반대에 가로막혀 지연됐다.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병력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 탄약은 계속 부족한 상태고 서방이 약속한 F-16 전투기 지원도 미뤄지고 있으며, 전사자 수도 급증하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이다. 최근 동부 격전지 아우디이우카를 러시아에 내주며 우크라이는 더욱 위태로운 처지에 내몰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직접 방문, 지원 호소에 나섰다.
작년 용병그룹 바그너 수장 프리고진에 이어 최근 나발니의 의문사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겐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방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비판을 가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친 국제 여론을 다시 환기함으로써 지지부진해진 서방의 지원에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5월까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계엄령이 발동돼 오는 3월로 예정됐던 대선을 포함한 선거가 모두 유예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임기를 연장하게 될 전망이다. 전시라는 특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따라 그의 정치적 운명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