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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떡' 기안기금…40조 쌓고 올해 2700억 썼다

이승현 기자I 2020.12.14 11:01:00

5월 출범 후 아시아나 2.4조·제주항공 321억 의결
'항공 빅딜' 성사에 아시아나 남은자금 사용 않을 듯
HMM, 자체 자금조달…해운업계 요청 없어
까다로운 지원요건에 연 7%대 고금리 논란까지
"시장안정화 성격…코로나 장기화에 수요 증가 전망"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지난 5월 총 40조원 규모로 조성된 기간산업안정기금이 지금까지 아시아나항공과 제주항공 등 항공사 2곳을 지원했다. 코로나19 위기에 맞서 주요 기간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출범했지만 지원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실제 도움이 절실한 기업에 기안기금은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해운업 요청은 없어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1위 저비용항공사(LCC) 제주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2번째 기안기금 지원 대상이 됐다. 지난 10일 기안기금 운용심의회는 제주항공에 321억원 규모의 기금지원을 의결했다. 운영자금 대출 257억원과 영구전환사채(CB) 인수 64억원의 방식이다.

아시아나에 대해선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인수계약이 최종 무산되자 총 2조4000억원 규모의 기안기금 지원이 결정됐다. 10%인 2400억원이 지난 10월 먼저 공급됐다.

그러나 2조원이 넘는 나머지 자금은 실제 집행될 가능성이 낮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내년 6월까지 아시아나에 총 1조8000억원의 유동성을 투입해 3000억원 규모의 영구채와 1조5000억원 규모의 신주를 사들일 예정이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지난 2일 간담회에서 “1조8000억원 투입으로 내년도까지 아시아나에 필요한 유동성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한항공에 대한 기안기금 지원 가능성이 있다. 대한항공 역시 자금난 때문에 신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산은이 이번 ‘항공 빅딜’을 위해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하고 이후 대한항공은 2조5000억원의 유상증자에 나서는 만큼 이른 시일 내 대규모 공적자금을 다시 투입할 지는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7~8일 국적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의 24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 공모 청약에는 약 9조5300억원의 매수주문이 들어왔다. 만기 수익률은 연 3.0%이며 표면 이율은 연 1.0%다. HMM은 기안기금 출범 때 지원대상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지난 2017년 유상증자 이후 3년 만에 이번에 자본시장을 통해 자체 자금조달에 나섰다.

기안기금은 주요 기간산업 중 항공업계와 해운업계를 주요 타깃으로 했다. 관련 법령(산업은행법 시행령)은 대상으로 항공과 해운 등 2개 업종을 명시했다. 현재로선 해운업계 요청은 없는 상태다.

◇고금리 등 까다로운 조건…“시장안정화 성격”

기안기금 지원 기본조건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영상 어려움 △총차입금 5000억원 이상 △근로자 300명 이상 등이다. 여기에 6개월간 고용 90% 유지·이익배당 금지·고액연봉자 보수인상 금지 등 조건도 있다.

이 때문에 지원자격이 크게 제한됐다. 대표적으로 쌍용차는 약 2000억원 상당의 기안기금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산은은 13분기 연속 영업손실에 올 1분기 ‘감사거절’ 의견을 받은 쌍용차는 단순히 코로나19 때문에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회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제주항공과 에어부산을 제외한 다른 LCC도 총차입금과 근로자 조건 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기안기금 지원대상에서 배제됐다. 에어부산의 경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작업 일환으로 진에어 및 에어서울과 단계적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고금리’ 문제도 논란이다. 아시아나에 적용된 기안기금 금리는 연 7%대다. 현재 기안기금채권 조달금리가 연 1.0~1.5% 수준인 점에 비하면 대출금리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제주항공이 지난 10월 13일 기안기금 신청의사를 발표하고도 실제 의결까지 약 2달이 걸리고 지원액수도 줄어든 것에는 높은 금리에 대한 부담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 신용등급(BBB)을 감안하면 기안기금 금리는 연 5~6% 수준으로 추정된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고금리 논란이 제기됐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에 대해 “신용등급에 맞는 시장금리로 지원해야 불필요한 자금신청을 줄여 민간 금융시장 위축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안기금은 위기에 대응한 시장 안정화 자금의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기업이 먼저 시장을 통한 자체 자금조달이나 다른 정책금융지원 등을 받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과 산은에선 기안기금이 오는 2025년 말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내년에 신청 수요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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