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유시장의 ‘원투펀치’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포함된 합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회원국과 비(非)회원국 사이에 원유 생산량을 제한하기로 합의한 건 15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감산’이 아닌 ‘동결’이다. 지난달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은 9564만배럴로 수요보다 약 260만배럴 많다. 지금 수준에서 동결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동결 합의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벌써 빛바랜 합의..약속 지켜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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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란이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은 산유량을 계속 늘리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으로의 원유 수출도 재개했다. 율러지어 델피노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은 17일 이란과 이라크를 만나 산유량 동결과 관련해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비잔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이란의 샤나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중요한 문제는 첫째 공급 과잉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란이 타당한 시장점유율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원유 생산 동결에 부정적이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의 한 소식통은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란은 산유량을 줄이거나 동결할 생각이 없다.
게다가 합의 주체인 러시아는 벌써 딴소리다. 러시아 에너지부는 회담 뒤 발표한 보도문에서 “4개국의 산유량 동결 합의는 다른 원유 생산국들이 이런 합의에 동참할 때 유효하다는 조건이 붙는다”라고 밝혔다. 만일 회담에 참석하지 않은 다른 산유국들이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생산량을 늘리면 4개국 간의 합의도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란이 원유 생산 동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원유 생산 동결도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 3위의 원유 생산국이 된 미국도 감산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만 그런 건 아니다. 감산 합의가 허망한 말잔치로 끝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합의를 지키지 않더라도 이를 제재하거나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원유시장 분석회사인 WTRG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OPEC은 1960년 출범 이후 틈만 나면 감산에 합의했지만 이들이 합의를 지키킬 때보다 어길 때가 더 많았다”고 분석했다.
◇ 산유국 공포감 확인..변화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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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유국간의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강조하는 시각도 있다. 현재의 수준에서 산유량을 동결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어쨌든 ‘합의’라는 형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배럴당 30달러를 밑도는 현재 국제유가는 산유국에게 곤혹스러운 수준의 가격이다. 산유국들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맷집 좋은 사우디조차 “비이성적인 가격”이라고 말할 만큼 부담스럽다. 매년 4%대의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던 사우디는 올해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곳간이 비어가는 러시아는 이미 대형 공기업을 매각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러시아는 예산 절반 이상을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에 의존한다. 지난해 유가 하락으로 세수가 이미 43% 감소했다.
빛바랜 동결이지만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은 앞으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올리비에 제이콥 페트로매트릭스 스트래티지스트는 “지난 2014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내린 공급 조절 결정”이라며 “감산이 아니라고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정책에 있어서 대단한 변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