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자영 기자] “낙찰가격을 듣고 놀란 것은 사실이지만 M&A업계 사람들끼리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죠. 속된 말로 ‘지를’ 것이라고 봤어요.”
한 M&A 관계자가 이번 현대자동차그룹이 한국전력 부지 입찰전에서 10조5500억원이라는 ‘통큰 ’ 숫자를 써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현대차(005380)그룹의 과거 뼈아픈 경험을 봤을 때 충분히 예상가능한 금액이었다는 것이다.
정몽구 회장의 통큰 베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4년 현대제철(004020)(당시 INI스틸)이 한보철강을 인수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 회장은 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오랜 바람이었던 일관제철소를 세울 수 있는 철강회사를 인수할 기회를 얻게 됐다.
외환위기로 부도가 난 한보철강이 다시 매물로 등장한 것. 당시 현대제철은 하이스코와 컨소시엄 구성해 입찰에서 포스코 컨소시엄과 맞붙었다. 7개 컨소시엄의 경쟁자가 있었지만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는 포스코 컨소시엄이었다.
한보철강의 당시 기업가치는 M&A업계에서는 5000억원대, 증권가에서는 8000억원대로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은 한보철강 입찰을 준비하면서 8000억원대를 써내려다 정 회장의 강력한 인수 의지에 따라 앞자리를 9로 바꿔 입찰에 응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1000억원대 이상 가격을 올렸음에도 포스코 컨소시엄 역시 9000억원 이상의 가격을 써내면서 인수가 물건너가게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됐다.
하지만 정 회장이 3년 이상의 고용승계 보장과 현대제철 수준의 임금 인상을 보장하겠다는 카드를 꺼내면서 가까스로 현대제철 컨소시엄이 낙찰자로 선정됐다.
이처럼 아슬아슬한 경험은 현대건설(000720) 인수 당시에도 반복됐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정면으로 맞붙으며 ‘집안싸움’으로 이목을 끌기도 했던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현대차그룹은 5조1000억원을 써냈고 현대그룹은 5조5000억원을 제시했다. 현대그룹이 인수자로 선정되며 현대차그룹이 고배를 마시게 된 것. 하지만 현대그룹이 인수자금 출처를 밝히지 못하는 등 문제가 불거져 결국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손에 쥐었다.
정 회장의 한전부지에 대한 통큰 베팅은 이 두번의 학습효과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M&A업계 관계자는 “한보철강과 현대건설 인수전 모두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이 승리한 것이지만 들여다보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며 “이번 한전부지는 현대차그룹이 어느때보다 인수 의지가 강력하게 표출돼 업계에서는 상당한 금액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많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