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주용기자] 어제(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추천한 책이 논란이 될 전망이다.
11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날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 도중에 세 권의 책을 소개했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정직한 내 집 마련`, `대통령 보고서` 등 세권. 노 대통령은 이중에도 `대한민국 부동산 40년`이라는 책을 특별히 지칭했다.
천 대변인은 "이 책은 참여정부뿐만 아니라 1960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망라한 책으로, 대통령께서 각별히 지시하셨고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이 작성해서 출판한 책"이라며 노 대통령이 발언한 내용도 함께 전했다.
노 대통령은 "오래된 역사를 가진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있었던 정책, 과거에 있었던 쟁점이 다시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장관들도 자기 분야에서 이런 것들을 정리해서 후임에게 넘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 책이 다양한 자료와 인터뷰 등을 포함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정리됐으니 꼭 일독할 것을 권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뼈아픈 실책…이헌재 시절 겨냥?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노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강추`했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국정브리핑 연재 당시, 이헌재 전부총리의 `정책실패`를 지적해 논란이 됐었는데, 책은 내용을 그대로 싣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29페이지에서 "부동산 시장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재정확대, 규제완화 등 대대적인 경기부양은 투기심리를 자극해 큰 낭패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참여정부도 딱한번 경기부양의 유혹에 흔들린 적이 있다. 그 결과 투기의 부활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게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어 2004년 6월18일 열린 경제장관간담회에서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성수기인데도 건설, 제조, 서비스업은 물론 농업 부문에서도 고용증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한뒤 며칠 후 정례브리핑에서 "건설수요는 올 4분기부터 내년에 걸쳐 전반적으로 가라앉을 것이며, 건설투자의 급락을 막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고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의 소제목은 `참여정부의 뼈아픈 실책`이다.
이 부총리가 ▲사회간접자본등 건설 투자 확대 및 주택건설지원 강화를 내용으로 한 `건설경기 연착륙방안(7.1 방안) ▲전국에 골프장 250개를 짓는 `골프장 경기부양론`을 들고 나왔으며, 때마침 한국은행이 당시 3.75%인 콜금리 목표치를 13개월만에 3.5%로 낮췄다고 지적했다.
콜금리 인하 당일, 재경부 이종규 세제실장은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세제의 완화를 시사하고, 정부와 여당안에 종부세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해말 입법과정에서 종부세 과세대상이 원래 생각했던 공시가격 6억원이상에서 9억원이상으로 완화되고 가구별 합산도 개인별 합산으로 크게 후퇴했다고 쓰고 있다. 2005년 8.31정책이 나와서야 종부세 등이 원상복귀됐다.
책은 "종부세의 후퇴와 원상복기 과정은 원칙의 후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다"며 "특히 투기심리가 팽배한 부동산 시장에서는 작은 후퇴의 신호하나도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연재될 당시부터 이 글을 꼼꼼히 읽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책으로 출간되는 과정에서도 `이헌재 부총리의 정책 실패` 지적을 수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관계자들은 실제 이 부분이 재차 부각될까봐 우려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시각이 청와대와 노대통령의 공식적인 인식이냐는 질문에 대해 천호선 대변인은 "직접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은 부동산 정책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것"이라며 "책 내용은 책 내용 대로 이해해줬으면 한다"며 언급을 피했다.
◇과잉유동성은 대출 탓…금리 실패·토지보상금 문제는 회피
이 책은 또 최근 청와대가 부동산시장의 과잉유동성 문제와 관련, 재경부, 금감위·원, 한국은행 등을 대상으로 책임규명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측 시각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책은 41페이지 <큰 칼`이냐 `작은 칼`이냐>라는 제목의 글에서 유동성과 부동산간 관계를 밝히면서, 역대 사례를 보면 `돈이 많이 풀려 통화량이 증가하면 어김없이 투기성 부동산 수요를 유발해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은행권 주택담보 대출은 2000년말 54조2000억원에서 2006년말 218조3000억원으로 부풀었다. 특히 2001~2002년중 주택담보대출은 매년 50%이상 초고속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카드사와 할부금융사등 기타 여신전문회사의 대출까지 포함할 경우 총 가계대출은 1999년 214조원에서 2006년초 545조5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의 일부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었으니 부동산 시장이 조용할 리 없었다"고 적고 있다.
대출을 잡지 못한 책임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은에 대해 금리 인상 등 통화운용정책에 대해서는 "고려는 적었다"고 하면서도 "부동산 가격 상승이 과거와는 달리 내수부진과 함께 찾아온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며 박승 한은총재가 경기부진과 부동산 과열이라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유동성 과잉의 또다른 원인이 되고 있는 각종 개발에 따른 토지보상금의 투기자금화에 대해서는 단 한줄, `토지보상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채권보상을 확대하는 등 토지보상제도를 고쳤다"고만 언급한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오히려 보상비가 집값 폭등을 부채질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는 건설교통부의 강변을 담고 있다.
책은 288페이지에서 "건교부가 행정중심복합도시 등 131개 사업지구에서 2006년 상반기 토지보상금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보상금(6조6508억원)의 37.8%(2조5170억원)가 부동산에 투자되었다. 특히 비수도권에서 풀긴 보상금은 3조2058억원이고, 수도권 부동산에 유입된 액수는 2840억원이었다. 이는 2006년 수도권 전체 부동산 거래규모(276조원)의 0.1%에 불과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아직까지 과잉유동성의 원인과 책임규명에 대한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지만, 이책은 사실상 과잉유동성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까지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수조원의 토지보상금을 일으켰던 참여정부의 개발정책은 책임이 없고, 금리를 올리지 못한 한은은 두마리 토끼를 잡느라 고심한 것으로 이해해줄 수 있으나, 주택담보대출을 막지 못한 금융감독당국은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는 식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 책이 각종 개발정책으로 인한 과다한 토지보상금이 유동성 과잉의 원인중 하나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정부가 문제라고 인식해 최근에 토지보상제도 개선안을 내놓은게 아니겠느냐"고 대답했다.
지난 7일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현금으로 풀려나가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런 돈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어서 시장의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며 토지보상제도 개선안을 내놓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책과는 다른 입장이다.
이 책은 이처럼 논란과 관심을 불러모을 이유가 몇가지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의 뿌리를 캐내 항구적인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근본을 밝힌다는 문제의식도 하나의 이유다. 국정홍보처 정책뉴스팀, 주택도시연구원, 국토연구원의 연구원들, 전직 기자들이 참여한 이력도 그렇다. 출판사 한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