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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하면 교수, 법조인, 의사, 시민단체 인사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형집행정지의 타당성을 검토하며 관할 지검장이 집행정지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과거에는 형집행정지 제도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일부 특권층의 ‘합법적 탈옥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무기징역이 확정된 중견기업 회장 부인이 이 제도를 악용해 4년 동안 병원 특실에서 생활한 이른바 ‘사모님 사건’이 파장을 일으키면서 정부는 형집행정지 제도 전반을 손봤다.
문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형집행정지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해지면서 실제로 치료·수술이 시급한 수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교정시설에서 사망한 재소자는 181명이며 이 중 138명(76.2%)은 형집행정지 절차를 밟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집행정지의 개선방안’ 논문을 통해 “일부 특권층의 제도 악용 사례가 있었다고 본래 취지를 몰각시킬 정도로 엄격하게 운영하는 것은 문제”라며 “‘죽어서야 교도소 밖으로 나간다’는 식으로 제도가 운영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 ‘깜깜이’ ‘들쭉날쭉’ 심의에 제도 불신만…사후검증 절차 마련해야
이 교수는 형집행정지심의와 관련해 구체적인 지침이 공개되지 않아 심의 과정이 불투명하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도 시행 통계도 내놓지 않고 있어 형집행정지 업무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금의 추상적인 형사소송법 규정만으로는 형집행정지 심의 결과 예측이 어려운 만큼 대상 질병, 정지기간, 연장조건 등을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해 제도에 대한 신뢰도와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형집행정지 심의의 균질성 확보도 주요한 과제로 꼽았다. 형집행정지의 요건인 ‘형의 집행으로 인해 현저히 건강을 해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검사의 직권에 달려 있다. 그런데 심의위원 간 서로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 의료전문가가 아닌 검찰 위원들은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이는 균질하지 않은 심의 결과로 이어져 제도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심의위원 간 균질성을 확보하려면 비슷한 질병 사례에 대한 전국적 자료, 과거 심의 이력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의 제공이 필수적”이라며 “심의 과정의 신뢰도가 담보되도록 의료위원의 방문경위, 감정경위 등을 보고서에 기재하고 심의 결과 내역도 공개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사후적으로 검증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는 교정시설 내 의료처우 개선이 중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이른바 ‘의료교도소’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수용자들이 형집행정지라는 복잡한 제도를 거치지 않고서도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해결 방안이란 것이다.
그는 “우선 우리의 형사사법 현실과 교정시설 내 의료처우의 현실을 직시해 형집행정지 제도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균형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며 “이제는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치료가 필요한 수형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