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열린우리당 김희선(金希宣) 의원과 친척들은 17일 기자회견에서 김 의원 부친 김일련(金一鍊)씨가 만주국의 경찰이었고, 독립군 3지대장인 김학규(金學奎) 장군과는 족보상 남남이라는 월간조선 보도를 반박했다. 다음은 김 의원측 주장 요약.
"부친, 해방직후 한독당서 활동"
김장군·아들 의성김씨 돌림자 써
◆"김 장군 규자는 의성 김씨가 쓰는 별 奎"
김 의원측은 김학규 장군이 쓰는 ‘별 규(奎)’자는 의성 김씨 가문에서 사용되는 것이며, 김성범씨의 아들들과 김 장군의 아들들이 모두 이름에 일(一)자를 쓴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김성범 일가가 만주로 갈 때 김 장군이 따라간 것은 두 사람이 친형제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 장군은 1900년생이 아니라 1897년생"
김 의원측은 큰 고모인 일신씨의 회고록에 따르면, 할아버지 일가가 만주로 이동한 1910년 김 장군이 13세로 기록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장군도 자서전에서 ‘형님과 15년 터울’이라고 밝혔는데, 의성김씨 족보에 김성범씨가 1882년생으로 돼 있어 1897년생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김 의원 부친은 만주 한독당 대표단에서 활동"
자신을 광복군 출신으로 소개한 김은석(85)씨는 “광복 후인 1946~47년께 중국 봉천 주화(駐華)대표단에 김일련씨가 왔는데 가명이 김평우였다. 김 장군의 비서장이던 이시찬 선생이 ‘백파 선생의 조카니 기탄없이 일하라’고 했다. 독립투사가 아니면 주화대표단에 파견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삼촌인 일건씨는 “일련 형님이 부친 뒤를 이어 김 장군을 뒷바라지했다”며 “광복 후 일련씨는 한독당의 특명으로 상인을 가장해 중국땅을 내왕하며 정보수집을 하다 소련군에 체포됐다”고도 했다. 김 의원의 숙모인 이경실씨는 “당시 일련씨가 집에 있는 소까지 팔아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김 장군 자서전 "나는 1900년생"
월간조선은 “김학규 장군이 1900년생인 것이 확정되면, 김성범씨와 김 장군은 아버지가 달라 친형제가 될 수 없다”며 “그런데 김 의원이 기자회견장에서 배포한 ‘김학규 장군의 호적’을 보면 김 장군의 생일은 ‘1900년 11월 24일’로,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명시돼 있다”고 반박했다.
월간조선은 또 “김 의원은 김 장군 자서전 속의 ‘김성범씨와 15살 터울이었다’는 부분을 1897년생이라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떠 있는 김 장군 자서전엔 ‘나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1900년 11월 24일…출생하였다’고 명시돼 있다. 김 장군 본인보다 자신의 생년월일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다.
◆"김 의원 부친 광복 전 행적은?"
월간조선은 “김 의원이 부친인 김일련씨의 독립운동가 경력을 입증하기 위해 이날 기자회견장에 모셔온 분들은 모두 ‘광복 이후’의 행적을 얘기했다. 일제 말기에 김일련이 만주 어느 독립군 부대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는지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독립운동가 김은석옹이 “광복 후 봉천에서 김일련을 만났다”고 밝힌 것을 비롯, 10여명에 가까운 증인들 중 ‘김일련이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김 의원은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행적을 입증하고,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 결정적 자료를 이번 기자회견에서 공개하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은 왜 김일련을 구속했을까? 김일련이 러시아 군에 구속된 것이 그의 일제 말 행적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의혹에 대한 해명 역시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