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주요 연기금의 주식투자에 걸림돌이 됐던 ‘10% 룰’이 완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4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어떤 종목을 더 사들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 룰이란 기관이나 개인이 상장기업의 지분 10% 이상을 보유할 경우 지분 변동이 있을 때마다 5일 내에 공시해야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특정 펀드나 기관이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흔드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장치로 도입됐지만 연기금의 자본시장 참여를 제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10% 룰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당국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하면 일단 한 종목을 10% 이상 보유한 주요 연기금의 공시의무를 매 분기 말로 유예해줄 예정이다.
금융투자업계는 그동안 10% 룰이라는 족쇄에 묶여 적극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서지 못했던 국민연금이 이번 법 개정을 계기로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를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대상 대신증권 연구원은 “10% 룰이 완화되면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9%를 넘는 종목 중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를 중심으로 추가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11일 기준 국민연금이 9%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종목 수는 58개에 달한다. 모두투어(080160)와 하나금융지주(086790) 유한양행(000100) 현대건설(000720) 제일모직(001300) 등이 보유 지분 상위 5위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삼성물산(000830)·삼성SDI(006400)·삼성엔지니어링(028050)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도 9%를 웃돈다. 9% 이상 보유 종목군 중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넘는 곳은 총 네 곳으로, SK하이닉스(000660)와 LG전자(066570) NHN(035420) 삼성물산(000830)이다.
또 다른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지분율이 9%를 넘지 않더라도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있는 종목들을 우선으로 사들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종목은 제일모직과 POSCO(005490) KT(030200) 신한지주(055550) KB금융(105560) 하나금융지주 등 총 6개로, 이중 절반이 금융주다. 국민연금은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005930)의 지분도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19%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10% 룰이 완화되더라도 국민연금이 국내 기업들의 지분 매집을 서두르진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시 의무일이 5일에서 분기 말로 늘어날 뿐 공시의무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므로 국민연금이 무턱대고 지분을 늘릴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공적기금 역할 강화와 주요 기업들의 경영 자율성 보장을 놓고 찬반양론이 여전한 만큼 국민연금은 신중한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