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서 떠올린 미술적 영감

오현주 기자I 2012.03.08 16:04:03

`노마딕 리포트 2012` 전
홍현숙·박홍순·고승현 등 젊은 작가들
몽골·남극·중국·이란 등 낯선 곳 체험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07일자 35면에 게재됐습니다.

▲ 박홍순 `남극일기`(사진=아르코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누구나 떠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노마드(Nomad·유목민)`는 그래서 애틋함이다. 그렇게 차마 떨치고 떠나지 못하는 `레지던트(Resident·거주민)`를 대신해 노마드를 자청한 이들이 있다. 스무 명 안팎의 젊은 예술가들이다.

작가들이 떠돈 곳은 몽골의 고비사막, 남극의 세종기지, 중국의 윈난성, 이란의 마술레. 그곳에서 특유의 상상과 감각으로 유랑의 이미지를 챙겼다. 그러나 결국은 `떠남`이었다. 생소한 시공간을 작업실로 삼은 작가들은 낯선 환경과 혹독한 대자연에 맞닥뜨리자 삶과 죽음을 가장 많이 떠올렸다.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이 이색전시를 열고 있다. `노마딕 리포트 2012` 전은 세계 속 오지로 분류되는 몽골·남극·중국·이란에서 꺼낸 작가적 상상력을 살아있는 체험으로 엮은 것이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한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결과물 보고전 격이다. 사막으로 또 얼음 위로 떠난 작가들은 `이동식 작업실`에 머물며 극지와 접촉했다. 특정한 곳에 정착하는 레지던스와 차별화한 그 작업들이 사진·영상·설치·기록·퍼포먼스 등으로 나왔다.

몽골에서 얻은 `찰나생 찰나멸`. 사는 것도 잠깐 죽는 것도 잠깐이다. 아니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다. 과거와 미래는 이어져 있고 생명은 돌고 돈다. 수도 울란바르트의 현대 몽골인이나 고비사막에 속해 살고 있는 전통 몽골인의 모습이 그랬다. 홍현숙은 지평선 끝으로 사라지는 자신의 뒷모습을 담아 광활한 대지에 대비되는 미미한 존재의 의미를 되새겼다. 강소영릴릴은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사막 폭풍`을 드러내 초원을 스치는 거대한 역사를 읽게 한다.

▲ 고승현 `백년의 소리-마술레 가야금`(사진=아르코미술관)

남극의 `살리다`. 한국어가 아니다. 스페인어 `Salida`다. 출구라는 뜻이다. 남극엔 숱한 출구가 있었다. 극한의 추위를 버티고 있는 과학과 생태가 그것이다. 박홍순은 남극일기로 망망한 풍경을 프레임에 담았고, 광모는 `빙하의 역사성`이란 주제로 마리안 소만 빙벽의 무늬를 사진에 옮겼다.

중국이 쓰게 한 `표류기`. 목적이나 방향을 잃거나 순탄치 않은 과정의 여행에 대한 기록이 표류기다. 막대한 땅덩어리에서도 어쩔 수 없는 현대 미술의 제도와 현장 문제를 이동과 거주의 문제와 결합해봤다. 표류하는 것과 생존하는 것은 맥락이 같았다. 현지작가 유지는 배를 형상화한 `부유(浮游)`를 소재 삼아 공간이동의 자유를 상징했다.

이란에서 맞은 `페르시아의 바람`. 생경한 이란 문화는 거리감부터 만들었다. 단 하나 접점은 자연. 쉼 없이 움직이는 자연과의 접촉에서 `다르다`의 신선함과 `같다`의 조화로움을 만났다. 고승현이 전통마을 마술레 계곡에서 주운 이끼 낀 나무로 가야금을 만들어 소통을 시도했다.

이주와 정주는 사람 사는 일에서 피할 수 없는 테마다. 하지만 그 틈새에도 누군가 닿아야 하는 세상은 있었다. 14일까지는 `몽골과 남극`, 이어 23일부터 4월15일까지는 `중국과 이란` 전을 연다. 02-760-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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