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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수검일보 유출 `후폭풍` 몰고오나

이진우 기자I 2010.01.15 17:15:37

금감원, 수검일보 `내용`보다 `유출` 자체에 초점
수검내용 유출이 과연 검사방해죄?..논란 남아
KB금융 종합검사 `초고강도` 불보듯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강정원 국민은행장을 KB금융(105560)지주 회장 내정자에서 자진 사퇴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국민은행 사전검사의 수검일보가 언론에 유출된 사건과 관련, 금감원이 발끈하고 나선 것은 몇가지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수검일보 유출 사건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금감원이 칼자루를 쥘 수도 칼 날을 쥘 수도 있는 분기점이다.
 
수검일보 내용 가운데 운전기사 조사 문제가 부각될 경우 금감원은 표적검사에 허위 해명을 했다는 부담까지 안게 된다. 반면 금감원의 조사업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면서 조사권한에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는 쪽으로 흐르면 반대로 국민은행을 다시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된다.
 
금감원이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이번 사건을 `검사업무의 독립성 훼손`, `수사의뢰 등 법적조치` 등 강경하고 자극적인 표현을 아끼지 않고 내뱉은 것은 이번 사건의 프레임을 검사권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 검사내용 새나가는 건 근본을 흔드는 문제..내용보다 '유출'에 초점

이런 판단의 기저에는 국민은행의 조직적 반발이 금감원의 검사권을 흔들고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현장에서 어떤 검사를 했는지가 상세히 외부로 흘러나가면 금감원은 어떤 검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면서 "국민은행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기관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감원 주재성 부원장보도 이 부분을 가장 무게를 실어 언급했다. 그는 "검사를 받는 금융회사가 수검일보를 유출한 전례가 없다"면서 "이런 일이 재발할 경우 검사의 독립성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감독당국의 입장을 서둘러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이런 일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검사결과로 정당함을 보여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제시됐지만, 사안의 성격이 그냥 덮고 넘어가기에는 심각하다는 최고위층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으로는 금감원을 이 사건의 피해자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한다면 김중회 KB금융 사장 인사 문제에 이어 다시 한 번 여론의 물꼬를 우호적인 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이 양측 모두 위기이자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양면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관치 논란으로 금감원 내부에서조차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사건을 조직 내부를 추스릴 기회로 활용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강정원 행장 운전기사 조사 일정이 수검일보에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고 조사 시간 등이 당초 금감원의 해명보다 더 길었다는 것에 대해 금감원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며 일축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번 사건을 `문건 유출 사건`으로 규정짓고 논란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차단하려는 노력이다. 
 
이번 논란이 금감원 조사권한 침해라는 주제를 벗어나 검사의 세부사항에 대한 진실게임 논란으로 옮겨붙는 것은 또 한번 관치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뇌관이기 때문이다.
 
◇ 수검내용 유출이 과연 검사방해죄냐..논란 남을 듯

문제는 전례없는 수검일보 유출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만한 규정이 마땅치 않다는 게 금감원의 고민이다. 관련 법규를 검토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수사의뢰 등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걸만한 규정이 애매하다. 

은행법 69조에는 금감원의 검사를 방해 또는 기피한 경우 해당 기관은 5000만원이하, 관련 임직원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수검일보 유출이 검사 방해에 해당하는 지의 논란은 남아있다.

금감원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항을 유출함으로써 검사의 중립성을 방해했다는 점과 ▲현장의 검사역들이 이런 부분을 확인하는데 시간을 뺐김으로써 검사를 방해받고 있다는 점을 검사방해로 볼 수 있는 요건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검사역의 심기를 건드리는 모든 행위가 검사방해라는 식의, 너무 포괄적인 해석이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은행법 69조가 아니라면 직무중에 얻은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지 못한다는 내규 위반 등으로 국민은행의 자체 징계를 요구하는 수 밖에 없다.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는 높였지만 후속수단이 애매한 상황인 것.

자칫 다른 금융기관들까지 `저런 식으로 금감원을 압박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고 금감원 조사역들이 부담을 느껴 적극적인 검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게 고민이다.

◇ 흔들리는 권위도 지켜내야..깐깐한 종합검사 불보듯

금감원은 이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기자회견에서 "수검일보 유출을 금융회사 직원의 윤리의식 문제나 내부통제 문제로 확대해 다른 금융회사 검사시에도 검사관련 자료 유출 등에 대해 중점 점검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권위적인 검사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지만 이번 사건은 피검기관이 금융당국을 압박하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금감원의 권위 회복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불똥이 어디까지 튀느냐다. 금융기관들의 문제점과 비리가 많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여론의 추가 금융당국쪽으로 기울어야 금감원의 조사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주요 은행들에 대한 조사 강도는 이래저래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금융계 안팎의 시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엄정한 대처를 강조한 것은 국민은행에 나가있는 검사역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검사를 진행하라는 신호로 볼 수도 있다"면서 국민은행에 대한 종합검사 강도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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