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상용기자]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중 `해관육조(解官六條)`가 관가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해관육조는 관리가 벼슬에서 물러날 때 취해야할 자세를 담고 있는데요, 백미는 `벼슬을 잃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백성이 공경할 것`이라는 대목입니다. 국회 국감시즌을 맞아 부처 수장들의 문책론과 책임론이 비등한데요,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힘들고 경제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관대작들이 곰곰이 곱씹어봐야 할 격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부 오상용 기자가 전합니다.
"자구노력 방안과 함께 은행(경영진)을 문책하는 것을 협의중이다. 은행장 연봉삭감과 스톡옵션 반납도 고민하고 있다."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외채 지급을 보증하기로 한 은행들에 대해 방만 경영과 부실한 외채관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야 의원들의 지적에 강만수 장관이 내놓은 답변입니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을겁니다. 미국발 `금융 쓰나미`가 이 정도일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포면적으로 그들의 외화차입 길이 막혀 달러 가뭄에 허덕이게 된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이 큽니다.
그렇다고 모든 원인을 바깥으로 돌리는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 그간 금리가 싸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외채를 끌어와 돈놀이를 하다, 이제 와서 정부에 손 내미는 은행들의 잘못도 큽니다. 국민세금으로 보증을 서 은행 빚잔치를 막겠다는 정부 대책에 국민들이 달가워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강 장관이 언급한 `은행 문책론`은 그래서 일면 타당합니다.
다만, 씁쓸한 뒷맛을 지울 길이 없네요.
`정책실패, 경제파탄의 책임을 지고 장관직을 내놓으라`는 야당의 문책성 발언에도, 꿋꿋하게 국감장을 지키고 있는 강 장관의 입에서 `은행권 문책을 검토하겠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역설적 상황 때문입니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도 외환정책 실패, 허점투성이 위기관리 능력, 시장의 신뢰상실 등 익숙한 레퍼토리를 열거하며 강 장관의 용퇴를 요구했습니다.
등떠밀리듯 아침 일찍 모여 임금삭감과 자구노력 방안을 내놨던 은행들이 이 장면을 봤다면 `누가 누구를 문책하겠다는 것인지`라며 실소를 금치 못할 대목이지 않나요.
어이없기는 `강만수 부총리 프로젝트` 문건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건에는 `장관의 PI(Personal Identity: 개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받고, 향후 부총리제 부활에도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등이 명기돼 있습니다.
강 장관은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는 것을 들었다. 비서실장이 본인이 만들다가 샜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고 해명했는데요, 이유야 어쨌든 미국발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부 공무원은 태평하게 `강만수 경제부총리 만들기 프로젝트`나 추진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잊을만 하면 되풀이되는 `퇴진론` 때문에 일그러진 강 장관의 표정 만큼이나 우리 경제도, 금융시장도, 국민들의 표정도 잔뜩 일그러지고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