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진섭 문정현기자] 정부의 외화유동성종합대책은 급격한 달러유출입에 따라 급증하는 단기외채를 잡기 위한 포석이다.
외환시장의 자유화가 진척됨에 따라 금융권에 대한 규제가 점차 느슨해진데다 파생상품 구조가 점차 복잡해지면서 단기외채를 유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단기 외화 차입을 최대한 줄이거나(선물환 거래규제) 금융회사들에게 차입에 대한 부담(은행세, 레버리지 비율)을 지우는 방식이다.
◇ 단기차입 억제 `초점`
당국은 현재 외국환은행에 대해 현물환 포지션과 선물환 포지션을 합한 종합포지션을 자기자본대비 50% 이하로 유지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이 자기자본의 3배에 달하는 현물환을 매도하고 동일한 규모의 선물환을 매수하면 이 비율은 `0%`가 돼 포지션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은행들이 선물환거래에 적극 나서게 되고, 이 과정에서 환율은 떨어지고 단기외채가 크게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종합포지션규제를 바꿔 선물환 포지션만 따로 떼어내 별도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선물환거래에 따른 외화 단기차입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재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지만 은행세 도입 역시 핵심은 외화부채 감소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비예금부채에 세금을 매기면 그 일부인 외화차입금의 조달비용이 높아진다. 곧 세금을 매겨 투기적 자본유입을 억제해 위기시 한꺼번에 외화가 빠져나가는 일을 미연에 막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고유선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정부 의도는 단기차입을 억제해 위기시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등 외환시장이 펀더멘털과 괴리된 채 움직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것 같다"며 "단기적으로 은행에 부담이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완화되는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 외은 선물환 규제에 '올인'
정부가 이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대책은 단기 외채 증가의 주범으로 꼽히는 은행 선물환 거래에 대한 규제다.
기업들이 선물환 거래를 하게 되면 은행들은 외환스왑이나 통화스왑 등으로 환위험을 헤지하는데 이 과정에서 단기외채가 크게 불어난다. 경기가 좋을 때는 별 문제 없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단기 외채는 국가의 부도위험으로까지 치닫을 수 있는 위험요인이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뿐만이 아니다. 빌려온 달러는 즉시 현물환 시장에서 매각되기 때문에 달러-원 환율의 하락을 부추기게 된다. 이같은 선물환거래로 환율 변동성이 심화되면서 투기세력들은 단기거래를 통해 차익을 챙기게 된다. 이들은 달러를 집중 매수해 환율 폭등을 조장한 뒤 대량으로 달러를 팔아 환차익을 얻고 환율 폭등으로 채권가격이 내려가면 환차익을 채권에 투자해 이중으로 수익을 올리기까지 한다. 외국계 은행들은 이 와중에 본점에서 달러를 빌려 매도차익거래 등을 통해 추가이익을 얻는다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 섣부른 시장 개입..'외국인만 배불린다' 부작용 우려
하지만 선물환 거래 규제를 비롯한 정부의 이번 규제안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과거에도 정부는 외환 시장 안정을 위해 직· 간접적으로 개입했다가 오히려 시장만 왜곡시켰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1월 정부는 차액결제선물환(NDF)시장에 대한 규제책을 단행했지만 결과는 외국환평형기금에서 막대한 손실을 냈고 결과적으로 외국인투자에게만 이득이 돌아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07년 초 발표한 해외펀드 투자 활성화 조치는 더욱 극명한 실패사례였다. 2007년 초 달러-원 환율이 900원대 초반까지 추락하자 해외부동산 취득한도를 1인당 300만 달러로 확대하고 해외펀드 주식양도차익 비과세 혜택을 3년간 시행했다. 넘치는 달러를 나라밖으로 퍼내 환율 급락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펀드들이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와 국내 투자에 나서면서 단기외채만 불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부) 교수는 "외환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꼭 필요하지만 외환거래 자체를 축소할 경우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이해득실을 잘 따져 위험관리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대책이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