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정훈기자] 부진의 늪을 헤매며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내수경기가 서서히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반가운 기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당국자들은 낙관적 발언들로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재경부를 출입하고 있는 이정훈 기자가 느낌을 적어 봅니다.
요 며칠새 만나는 사람들과 가장 많이들 나누는 인사라면 "정말 춥죠?"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절기상으로 이틀 후면 벌써 봄을 맞이하라는 `입춘(立春)`인데, 한동안 이름값 못하던 이번 겨울 추위의 끝자락은 오히려 매섭기만 합니다.
비유가 적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경제상황도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심리는 고조되고 있는데 과거 데이터나 미래 전망을 보여주는 경제지표나 현재 우리가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에 못미치고 있지요.
내수지표인 도소매판매나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작년 12월 수치까지만 해도 여전히 얼어붙어 있습니다. 재래시장이나 기업들이 체감하거나 기대하는 경기수준 역시 지난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종합주가지수가 900선까지 올라갔다지만, 정작 주식시장 참가자들은 경기회복 기대감으로 지수가 올랐다고 보지 않습니다. 증시 호조로 인한 부(富)의 효과도 지금 기대하기엔 이른 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과천은 한 발 앞서가는 듯 합니다. 재경부를 출입한지 이제 불과 1주일 남짓인데, 이곳 관료들이 말하는 경기회복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헌재 부총리는 올들어 몇 차례 강연과 기자들과의 담화 자리에서 여러 차례나 "연초 경기가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다" "내수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부총리의 경제 자문관 역할을 하는 이건혁 박사도 연초 백화점 매출과 카드 사용액 증가, 주식시장 호조 등을 언급하며 부총리의 장미빛 전망을 근거있게 보이기 위해 부지런히 재경부 브리핑룸 문턱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쉽사리 납득하지 못하겠더군요. 하나의 꽃봉우리를 보며 봄을 기대할 순 있지만, 이걸로 "이제 봄이다"고 말하기엔 우리가 체감해온 내수경기 부진의 터널은 너무나 길었다는 겁니다.
백화점 매출은 늘고 해외 지출도 늘어나고 있지만, 고소득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간 소비의 양극화가 여전하며 기업들 역시 투자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책이건 민간이건 주요 연구기관들도 `아직은 아니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여전히 경기는 하강국면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역시 서둘러 종합투자계획을 실행하려 하고 우회적으로 한국은행에 콜금리를 더 내리라고 압력을 넣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경제는 단순히 경기순환적인 의미의 경기하강을 겪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IMF외환위기의 후유증과 맞물리면서 78,80년대의 고성장기를 지나 저성장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선진국 진입의 징후라는 억지성 주장도 있지만, IMF위기 후 급속히 성장 잠재력이 떨어진 점을 생각한다면 선진국 진입이 아니라, 개발도상국 특유의 성장엔진을 잃어버렸다는 평가가 더 우세합니다.
때문에 경기하강은 그 의미가 심각한 것이고, 또 이를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단순히 경기순환적인 반등에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경제의 틀을 바꾸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틀의 변화에 정책적 노력을 다해야한다는 지적입니다.
밖엔 한파가 몰아닥치는데, 입춘만 믿고 두꺼운 옷을 옷장에 다 넣어 버려선 안되겠지요. 정부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좋지만, `립 서비스`보다는 실제 정책이 우선돼야 합니다. 장기 성장엔진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다시없이 중요한 때입니다. 너무 서둘지 말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