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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리포트)없는 집들은 큰집만 바라본다

선명균 기자I 2001.11.15 17:20:51
[edaily]우려했던 대로 4분기들어 회사채 만기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상환자금을 이미 확보한 곳이 있는 반면 아직 자금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추운 겨울을 맞아 잘사는 집과 못사는 집 사이에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모습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기관들이 회사채 투자를 꺼리면서 저등급 기업들은 이제 정부대책에만 희망을 걸고 있는 형편입니다. 찬바람이 돌고 있는 회사채시장을 선명균 기자가 들여다봤습니다. 얼마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회사채를 발행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규모는 5000억원이며 대략적인 발행수익률까지 흘러나오더군요. 보통 이렇게 시장에서 얘기가 돌게되면 발행이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두번에 걸쳐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그때마다 시장에서 먼저 얘기가 돌았죠. 그리고 실제로 발행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삼성전자 회사채 발행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더군요. 투신사 관계자와 점심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뒷얘기를 들어보니 삼성전자가 회사채 발행을 준비했던 것은 맞지만 금리때문에 일단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투자기관에서 바라는 금리과 삼성전자가 생각하는 금리간에 차이가 있었나 봅니다. 삼성전자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입니다. 회사채 신용등급도 최고등급인 AAA입니다. 그런데도 투자기관이 금리(채권가격)를 놓고 주장을 굽히지 않은 데 대해 투신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10월초 발행한 회사채를 인수한 기관이 이후 금리가 급등하면서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귀띔을 해주더군요. 그러자 삼성전자도 미련없이 발행계획을 접었습니다. 삼성전자 얘기는 두가지를 시사해 줍니다. 첫째는 투자기관들이 등급이 높은 회사채라도 함부로 손을 대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0월이후 금리가 급등하면서 막대한 평가손을 입은 기관들이 생겼습니다. 몸을 사리는 것은 당연하죠. 아무리 등급이 좋아도 적정금리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함부로 손을 대지 않을 겁니다. 주식시장의 호조로 채권금리가 다시 상승하는 요즘 회사채는 더욱 인기를 잃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번째는 우량기업들은 자금에 여유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삼성전자 같은 거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신용등급이 A급 이상이거나 그룹계열사의 경우는 올해 회사채 상환자금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6,7,8월 저금리 상황을 이용해서 발빠르게 회사채를 발행해 놓은 덕분이죠. 실물경기 부진으로 투자수요가 크지 않다는 것도 자금부족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있을 수 있는 요인입니다. 문제는 BBB급부터 투기등급에 속하는 회사채들입니다. 미 테러사태로 실물경기 회복이 더욱 늦어질 것이란 우려때문에 투자기관들은 저등급 회사채 투자를 꺼리고 있습니다. 10월이후 금리가 급등하면서 BBB급 이하 기업들의 발행규모가 크게 줄어든 것은 이런 이유죠. 유통시장에서도 BBB급 회사채는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국은행은 4분기 회사채 만기가 대략 1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용케 올해를 넘긴다고 해서 당장 사정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프라이머리CBO가 내년이면 본격적으로 만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희소식이라면 이번달 두건의 프라이머리CBO가 발행된다는 사실입니다. 9월이후 두달만에 발행되는 프라이머리CBO입니다. 재경부는 프라이머리CBO 활성화를 위해 이번달초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재원을 확충하고 기업별, 계열별 발행한도도 확대했습니다. 또 재정경제부와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이달말 3억달러 규모의 벤처 프라이머리CBO를 미국시장에서 발행한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번 P-CBO발행을 통해 급한 불을 끄게된 벤처기업들로서는 정부의 이런 정책이 반갑게만 느껴질 겁니다. 채권시장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하나같이 회사채 만기도래를 걱정하면서도 그럭저럭 위기는 넘길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점에 놀라게 됩니다. 이같은 낙관론의 근거는 바로 "정부가 어떻게든 소화해주겠지"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발벗고 나서는 정부를 바라보며 "언제까지 저러려나"하는 걱정이 들다가도 달리 믿을 구석이 없다는 사실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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