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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원, 극심한 스트레스에 뇌출혈…대법 "업무상 재해"

박정수 기자I 2023.04.25 12:00:00

전국 600개 이상 가맹업체 무인주차장 전화상담
석간조로 오후 2~11시까지 근무…식사 외 휴게시간 없어
식사 중 쓰러져 ‘뇌기저핵출혈’ 진단…우측 반신마비에 실어증
2심 원고 패→대법, 파기·환송…"만성적 과중한 업무 종사했다고 봐야"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극심한 스트레스로 뇌출혈로 쓰러진 콜센터 상담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콜센터 상담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B운영 대행업체인 주식회사 C와 파견 고용계약을 체결한 후 2018년 2월 7일부터 서울 영등포구 소재 사업장에 파견돼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했다. A씨가 파견된 사업장은 전국 600개 이상의 가맹업체의 무인주차장을 이용하는 운전자들에 대한 무인주차 정산기 사용방법 안내, 주차요금 정산안내, 무인주차 사후서비스(A/S) 접수 진행에 관한 전화상담 업무를 수행하는 콜센터다.

A씨는 1주당 평균 5일, 3교대 중 석간조로 오후 2시부터 11시까지 근무했다. 근로시간 저녁 식사시간(60분) 외에는 휴게시간이 없었으며, 휴게장소도 마련되지 않았다. A씨는 2018년 9월 사업장 인근 식당에서 식사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돼 ‘뇌기저핵출혈’ 진단을 받아 우측 반신마비, 실어증 증세를 보였다. 이에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고정 석간조(오후 2시~11시) 외에 객관적으로 업무부담 가중요인은 확인되지 않고, 업무시간 확인결과 신청인의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은 37시간 49분으로 확인돼 고용노동부 고시의 단기 및 만성 과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요양불승인결정을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를 했으나 2020년 5월 기각됐다.

A씨는 콜센터에서 전화상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폭언이나 성희롱을 하는 민원까지 응대했고, 항의나 불만 사항들도 업무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직접 해결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의 청구를 인용,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의도, 원고의 업무시간 등에 비추어 보면 과로를 했다고 보기는 힘드나,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업무인 점, 업무시간 동안 적절한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노동 특성을 고려하면 노동의 질 측면에서 노동강도가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된다는 소견을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원고가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기 이전에도 전화상담 업무에 종사하여 업무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전 사업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를 하면서 특정 카드사의 업무만을 담당해 근무시간, 상담 내용 등이 이 사건 사업장의 업무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봤다.

이어 “석간조 근무의 종료시간이 밤 11시로서 일부 시간은 야간 근무에 해당하고, 늦은 시간까지 계속적으로 근무하는 것 자체가 원고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이 사건 병을 유발 내지 악화시킬 정도의 업무부담 또는 누적된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추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심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 12주 동안 1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37시간 49분에 불과해 병이 발병할 정도로 단기간 또는 만성적으로 과중한 업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경찰병원 신경외과 감정의는 업무상 과로가 이 사건 병을 유발했다거나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을 악화시켜 병을 유발했다고 볼 수 없다는 소견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적어도 A씨가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한 전체 기간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포함시켜 판단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특히 1심과 2심에서 한 진료기록감정촉탁 회신 및 사실조회 회신의 상당 부분은 원고의 종전 사업장에서의 근무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의 근무기간(약 7개월)과 그 직전인 2년 동안의 일반건강검진결과만을 주된 근거로 해 의학적 소견을 제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전제 자체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원고의 근로시간, 주거지와의 이동거리·통근 소요시간, 연령·성별 및 가족관계에 따른 역할에 비추어 원고의 실질적인 수면시간은 최대 6시간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의 근무 강도와 이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더구나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시간 도중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이 확보돼야 함에도 실제로는 휴게시간이 전혀 없었다.

대법원은 “원고를 채용할 당시부터 건강진단결과 등을 참고해 ‘고혈압’ 등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적절한 업무에 배치하면서 직무스트레스 요인이나 건강문제 발생가능성 및 그 대비책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거나 뇌혈관질환의 발병위험도를 평가해 고혈압 관리 등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근로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더라도 원고는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를 장기간 담당함으로써 ‘현행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종사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며 “이로 인해 높은 수준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상당 기간 동안 노출됨에 따라 뇌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담이 발생해 이 사건 상병의 발병 또는 악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단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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