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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6.25전쟁 당시 F-51 무스탕(Mustang) 전투기를 일본 이다즈께 기지에서 인수해 온 10명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한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공군 전투기의 활약에 우리 군의 희망이 집중된 만큼 F-51 인수 임무는 중요했다.
미군은 F-51 전투기 인수 조종사 선발에서 ‘훈련 없이도 전투기를 몰 수 있는 조종사’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1500여 시간의 비행경력을 인정받아 선발된 고인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투기를 우리 땅에 전개했다.
전투기 출격은 인수된 다음 날인 1950년 7월 3일부터 시작됐다. 고인은 전쟁 중에 총 10회 전투출격 임무를 완수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공군이 지난 2008년부터 매년 7월 3일을 ‘조종사의 날’로 지정한 이유도 고인을 비롯한 전투기 조종사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고인은 대한민국 공군의 첫 공수임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1950년 11월 UN군의 총 반격으로 진해기지에서 여의도 기지로 전진한 공군은 미 5공군으로부터 C-47 수송기 한 대를 인수했다. 고인은 이 때 수송반장으로 임명돼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공수임무를 수행했다.
참모총장 재임 때는 방공관제사령부의 전신인 제30방공관제단을 창설했다. 1964년 개봉돼 25만명의 관객을 극장가로 이끈 영화 ‘빨간 마후라’의 제작을 지원한 이도 고인이었다. 전역 후에는 주 태국 대사, 대한항공 사장,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1920년 10월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8년 공군 학사사관후보생 2기로 임관했다. 공군참모총장 재직 전에는 공군 제1훈련비행단장,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 공군대학교장, 공군참모차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유족은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차려졌으며 영결식은 오는 7일 오전 7시 공군장으로 치러진다. 안장식은 같은 날 11시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