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인재(人災)와 투자원칙

김진석 기자I 2002.09.03 18:59:55
[edaily 김진석기자] 태풍 "루사"가 할퀴고 간 수해현장은 아수라장입니다. 천재지변이지요. 그러나 세상에는 인재도 많습니다. 특히 증권시장의 인재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인재는 다름 아닌 작전의 폐해입니다. 증권시장의 인재를 보면서 주식투자의 원칙론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증권부 김진석 기자가 전합니다. 주식시장은 투명성과 공정성이 그 어느 시장보다 담보되어야 할 곳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불공정 거래행위의 적발이 잇따르면서 시장분위기는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시장참여자들도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어제오늘의 얘기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웬 불공정거래며, 작전세력이냐는 것이죠. 시장도 작전세력의 검찰고발 소식 정도에는 꿈쩍도 안 합니다. 시장과 시장참여자들에게는 이미 내성이 생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증권시장의 인재, 작전의 발본을 근절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 델타정보통신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폭성 작전은 도리가 없습니다. 증권시장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작전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바람일 뿐이란 생각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80년대 중반 그해의 슬로건으로 "해충박멸의 해"로 정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충은 완전 박멸이 어렵기 때문에 개체군의 밀도를 감소시키는 데 주 목적을 둔다는 설명을 곁들인 기억이 납니다. 증시의 작전도 아마 개체군의 밀도를 감소시키는 차원에서 노력하는 게 현실적이란 생각입니다. 요즘 시장에선 갈수록 "정글의 법칙"만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투자 세태도 많이 변했습니다. 투자자는 없고, 매매 기술자만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투자자들도 할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원칙과 정도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원칙을 강조하기 위해 몇 가지 단상을 떠 올려봤습니다. (단상Ⅰ: 수재민과 주재민) 지난 90년 10월10일을 기억하십니까. 이날은 증권사들이 이른바 "깡통계좌"를 정리하기 위해 주식을 강제 매각한 날입니다. 투자자들이 신용(외상)으로 매입했던 주식이 주가가 급락하면서 미수금과 미상환 융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증권사들이 정리매매에 나선 것입니다. 당시 증권사 사장단은 사전에 담합, 군사작전을 치르듯 "깡통계좌"를 전격 정리했습니다. 때문에 당시 돈 잃고 주식 잃은 투자자들의 분노는 대단했습니다. 적잖은 증권사 지점은 아수라장이 됐지요. 투자자들로부터 뺨을 얻어맞은 지점장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떤 시인은 당시 "깡통계좌"를 정리 당한 투자자들을 수재민에 비유해 "주재민(株災民)"이라고 불렀습니다. "깡통계좌" 사건은 많은 교훈을 남겨줬습니다. 외상으로 주식투자에 나서지 말 것과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라는 것을 투자자에게 되새겨줬습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 말입니다. (단상Ⅱ: A 사장의 충고) 모 증권사 A 사장은 언젠가 인생이 망가지는 3가지 지름길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 정치를 하는 일이고, 둘째는 마약에 손을 대는 일 이라고 했습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이 핵심입니다. 바로 주식투자를 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뒤집어보면 하지 말라는 얘기죠. 물론 A 사장의 말에는 주식투자를 하려면 제대로 공부하고 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A 사장은 평소 시장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표하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사장이 망가지는 지름길 가운데 하나로 주식투자를 꼽은 것은 곱씹어 볼 일입니다. 주식투자가 그 만큼 녹록치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족입니다만 강산이 한 번 반 변할 동안 여의도 증권가를 취재해 온 기자도 시장보기가 점차 어렵다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고수" 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인지 그저 난감할 뿐입니다. 먼저 저의 우매함을 탓하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헛갈리는 상황입니다. (단상 Ⅲ: 욕심을 버려라) 기자가 초년병 시절의 얘깁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당시 증권업계 원로 한 분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김 기자! 투자자들이 흥하고 망하는 차이가 뭔 줄 알아?" "글쎄요." "증권부 기자되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지" "뜸들이지 마시고, 자답해 주시죠" "바로 욕심이야. 나는 많은 투자자들을 겪어봤어. 흥했다가 망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절제를 못한 탓이지. 그게 욕심이거든" "어디 욕심만 갖고 됩니까. 워낙 변수가 많은 곳인데요" "그래도 마음가짐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지금까지 거론한 3가지 단상은 아주 단순하고 원론적인 얘기들입니다. 그러나 기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A 사장과 원로의 말씀에 무게가 실리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길에는 왕도가 없듯이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란 생각입니다. 그저 원론과 정석에 충실하는 게 최선의 투자론이란 생각입니다. 하늘 한번 쳐다보는 심정으로 상식적인 얘기를 해봤습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