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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민은 ‘나피’(NAFIY)란 이름으로 DJ 활동을 한다. 드물게 예명을 쓰지 않는 경우다. “민증엔 없지만 여권 상엔 분명히 표기된” 아버지의 고향 “아프리카 이름”이라 했다.
그가 ‘나피’로 청중에게 들려주는 음악이란 그가 태어나기도 전 1980~90년대 블랙 뮤직이 주를 이룬다. 살갑게 아버지 얘기 꺼내는 세상의 아들이 몇이나 되겠나. 그 순간 한현민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린 시절 집에서 가장 많이 쉽게 접할 수 있던” 아버지의 ‘최애곡’들이라 했다.
10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해 각종 예능을 휩쓸었던 그의 성장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나이는 자연스레 먹어가는데 진공관 속 방부 포장돼 있는 그 시절 한현민으로만 대중이 기억하고 만 혹은 하고자 하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그건 어느덧 23살된 한현민의 숙제일 수도,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다시 만나면 뭔가 달라진 게 확연히 보이듯 근황을 물어봐야 할 정도로 뜸했던 거 였는지도 모른다.
우리(WE)의 철자 W. E가 포함된 어떤 단어를 자신은 이미 거쳐간 시절, 지금의 청소년에게 들려줄 ‘주제어’로 제시해야 하는 ‘WE 캠페인’ 미션에서 그가 들고 온 단어는 ‘무게’(WEIGHT)였다. 6남매 맞이로서 동생이 이미 사춘기거나 이제 곧 사춘기인데 그런 걱정으로 시작돼 이야기는 엄마로 흘렀다. 내가 아닌 엄마가 지나온 삶의 무게에 대해 이제 조금은 알 거 같다는 내용이었다.
듣고 보니 부끄러워지는 대목. 그게 K-장남 장녀들의 ‘로망’인 줄 몰랐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걸로 보이는, 한현민은 “어머니한테 집을 사드리고 싶다”는 매우 현실적인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대가족이다 보니까, 큰 집을 사드려야 하는데.”
어머니 그리고 가족을 “삶의 이유”라 할 때. 그의 정신적 성장판이 이토록 여물었음을 ‘한현민 2.0’을 펼쳐 보일 때가 이제 온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