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부품도 '관세 폭탄'…삼성·LG 복잡해진 셈법

경계영 기자I 2017.11.22 11:11:07

美 ITC, 120만대 초과 세탁기에 50% 관세
부품에도 관세 50% 부과하는 권고안 포함
'쿼터 이하 물량에도 관세 부과되나' 우려

지난 8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한국 부품을 장착한 미국 자동차가 수출되면 무슨 소용입니까, 미국 내에서 부품을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달 초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 판문점을 방문하고자 전용 헬기를 탔다가 한국 상공을 내려다보면서 한 말이다. 최종 제품은 물론, 결국 부품까지도 미국산을 가져다쓰라는 의미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1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세탁기 120만대 이상 물량과 특정 부품 5만개 이상 물량에 대해 50% 관세 폭탄을 부과하자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놓은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일맥 상통한다. 세탁기 완제품도, 부품도 미국 내에서 만든 것만 미국에서 팔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ITC, 부품까지 권고안에 포함

ITC가 내놓은 권고안을 보면 3년에 걸쳐 관세를 단계적으로 부과하게 돼있다. 일단 ITC 위원 4명 모두 미국으로 수입되는 연간 120만대 이상 세탁기 물량에 대해 50% 관세를 매기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2년차엔 45%, 3년차엔 40%로 5%포인트씩 관세율은 낮아진다.

다만 쿼터로 제시된 120만대 이하에 대해선 위원 간 의견이 갈렸다. 2명은 아예 관세를 부과하지 말자고 주장한 반면, 나머지 2명은 1년차에 20%, 2년차에 18%, 3년차에 15%로 각각 관세를 매기자고 의견을 냈다.

당초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를 주장한 미국 가전업체 월풀(Whirlpool)이 모든 세탁기에 대해 관세 50%를 물리자고 주장하자, 삼성·LG전자는 145만대를 쿼터로 제시하며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만 관세를 부과해달라고 요청했다. ITC가 이들 주장 사이에서 일종의 절충안을 낸 셈이다.

세탁기를 구성하는 부품까지도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월풀이 제소한 대로 세탁기 캐비닛, 세탁통, 세탁바구니 등 주요 부품이 그 대상이다.

부품의 경우 쿼터가 각각 1년차 5만개, 2년차 7만개, 3년차 9만개로 각각 제안됐다. 쿼터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선 각각 1년차 50%, 2년차 45%, 3년차 40%씩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 다만 쿼터 이내 물량에 대해선 관세를 적용하지 않는 안으로 만장일치 제시됐다.

이 권고안은 다음달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돼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한 후 60일 이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최종 결과를 늦어도 내년 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세탁기 공장 앞당겨도…” LG “완제품 쿼터 부담”

미국 ITC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적용하겠다곤 했지만 사실상 주 타깃은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LG전자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세탁기는 연간 200만대 이상으로 전체 미국이 수입하는 세탁기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번 권고안대로 세이프가드가 발동된다면 삼성·LG 세탁기 수출 물량 200만대 가운데 최소 80만대 이상은 쿼터를 초과한 물량으로 관세 50%를 부과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문제는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위원 4명 가운데 2명은 쿼터 이하 물량에 대해서도 20% 관세를 물리자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한국, 베트남, 태국 등에서 세탁기를 생산해 수출하면 관세가 아예 없거나 1% 수준에 불과했지만 최대 20%까지도 관세를 내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단, 미 ITC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고려해 한국산 세탁기와 부품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여기서 삼성·LG 간 셈법이 갈린다. 대(對)미 수출용 세탁기의 경우 삼성전자는 베트남·태국 등에서, LG전자는 한국과 베트남·태국 등에서 각각 생산하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창원에서 세탁기를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전체 대미 수출 물량에서 20% 정도를 차지한다. 삼성·LG전자가 각 100만대씩 이상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LG전자는 20만~30만대 가량에 대해선 관세 부담이 없다. 부품 상당수도 창원에서 만들어진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는 대미 수출용 세탁기를 우리나라에서 만들고 있지 않아 이번 권고안에 대한 우려가 더욱 크다. 삼성전자는 국내 부품 협력사와 미국에 동반 진출하는 안 등을 모색하곤 있지만 사정상 쉽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뉴스룸을 통해 “어떤 형태의 관세든 제품 가격을 인상시키고 소비자의 제품 선택의 폭을 좁힐 뿐 아니라 (삼성전자가 짓고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의 일자리 창출까지 해칠 수 있다”라는 내용의 다소 격앙된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내년 초 가동되는 사우스캐롤라이나 현지 세탁기 공장이 미국 내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만큼 어떤 형태의 세이프가드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LG전자도 완제품 관세 부담이 있는 점을 고려해 2019년 1분기로 예정된 테네시주 현지 세탁기 공장 가동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완제품과 부품 모두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은 현지에 짓는 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물론, 미국 내 비즈니스 활동에 제약을 주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7에서 삼성전자 세탁기 ‘플렉스워시’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LG전자 세탁기 ‘트윈워시’가 미국 매장에 진열돼있다. 사진=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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