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유정기자] 3월이 훌쩍 지나가고 있습니다. 봄바람에 처녀 가슴만 울렁이는 것이 아니라 여의도도 술렁이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의 연봉협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가운데 증권가 한쪽에선 치열한 스카웃전이 벌어지고, 다른 한쪽에선 치솟는 몸값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증권부 김유정 기자가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증권사 CEO들의 심경이 어떤지 전합니다.
2000년 초반에만 하더라도 펀드매니저는 신랑감 1등 후보였습니다. 고액 연봉 직업으로 잘 알려져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점점 펀드매니저들의 `혼삿길`이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죠. 애널리스트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데다 증권사뿐 아니라 자산운용사도 내부 리서치를 강화하면서 이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증권사의 3월말 결산을 앞둔 요즘과 같은 시기를 프로야구의 연봉 협상 시기에 빗대 ‘스토브리그(stove league)’라고 부릅니다. `누가 연봉 5억원 받고 어디로 옮겼다더라`, `누구는 7억원이라더라`하는 소문이 여의도 증권가를 떠도는 것을 보면 요새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이 프로야구선수 부럽지 않아 보입니다.
중소형 증권사에서 이름을 알린 애널리스트들을 대형사에서 더 높은 몸값을 주고 스카웃하는가 하면, 국내 증권사가 연봉때문에 외국계로 사람을 내줘야 하는 현상도 비일비재합니다. 또 같은 회사의 비슷한 직급이나 경력의 애널리스트들도 능력에 따라 철저하게 차별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에 대해 증권사 CEO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최근 A 증권사 CEO는 "애널리스트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결국 제 살 깎아먹기"라고 지적했습니다. 자기 몸값 관리도 중요하지만 조직 전체를 생각하는 `프로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증권사 CEO들은 치솟는 애널리스트들의 몸값에 대해 한결같이 우려하면서 "각 증권사들이 애널리스트들을 스스로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B 증권사 CEO는 "자본주의 속성상 수요가 공급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며 "이를 고급 인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 내부 인적 자원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C 증권사 CEO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자체적으로 애널리스트들을 키워야 한다"며 "경쟁력 있는 애널리스트를 스카우트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타 증권사의 베스트 애널들을 통째로 데려가는 등 지나친 경쟁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증권사 CEO들은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애널리스트 `순위`를 매기는데 대해서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입니다. 순위 경쟁 자체에 대한 부담도 그렇지만, 결과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마켓워치 등 뉴스미디어가 `올해의 애널리스트`와 같은 순위를 발표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하거나 순위 선정 배경을 공개한다는 것이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외부 평가를 통해 애널리스트의 역량이 강화되는 순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튀지는 않지만 차분하고 긴 호흡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애널리스트가 소외되는 구조가 발생하고 있는데 대한 경계는 필요하다는게 증권사 CEO들의 얘기입니다.
또한 증권사들 각자의 노력에 증권업협회 등이 나서 적극적으로 새내기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성장성 있는 애널리스트 공급을 늘려 수급을 맞추자는 것이죠.
증권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3년 안에 애널리스트 `품귀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하니 애널리스트 몸값을 달래줄지 기대를 걸어봅니다. 지난 13일 현재 협회에 등록된 애널리스트는 100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957명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수가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처음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말엔 797명이었던 애널리스트가 2005년말엔 776명으로 줄었으나 이후 다시 늘기 시작, 작년 말에는 934명에 달했고 올해들어서도 23명이 추가 등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각 증권사들이 1대1 `도제식` 교육을 통해 애널리스트들을 양성하고 있어 이들이 3년 후면 대거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입니다. 10개 주요증권사가 현재 자체양성중인 보조연구자(RA)는 108명에 달한다고 하니 이들이 3년 후면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내걸게 된다는 얘기지요.
애널리스트 본인들도 할말은 많을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도록 요구하거나, 무언가 튀지 않으면 내부나 외부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불만입니다. 또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언제든 퇴출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잘나갈때 몸값을 올려야 한다`는 심리가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항변도 있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계 위기론의 요인으로 거론되는 스타들의 몸값에 대해 영화 제작자 겸 매니지먼트사 대표들이 `스타 몸값 조율`에 발벗고 나선다고 합니다. 시장의 수요에 따라 한번 올라가면 내려갈 줄 모르던 스타들의 몸값을 인센티브 계약 등을 통해 조절하겠다는 것입니다.
한 매니지먼트사 사장의 말이 눈길을 끕니다. "배우들도 영화계 식구로서 좋은 방향을 위해 모색하고 있다." 지금 여의도에 던지는 화두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