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차라리 집을 팔고 말지

강종구 기자I 2003.05.28 16:16:20
[edaily 강종구기자] 국제부 강종구기자는 지난 해 은행 빚을 내어 과감히 집을 장만했습니다. 최근에 집값이 조금 올라 기분이 좋을 만도 한데 오히려 걱정이랍니다. 요즘 세계 경제에 화두가 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이 이유라나요. 최근에 달러가치가 계속 내려가는 것도 걱정을 더해 준다는데 사정을 들어보시렵니까. 전세계가 물가 걱정으로 난리입니다. 물가 걱정이라면 오르는 것 밖에 모르는 우리인데 지금은 거꾸로 물가가 내릴까봐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물가가 내리면 시장에 가서 원하는 걸 싸게 살 수 있어 좋을 것 같은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물가가 오르는 걸 인플레이션이라고 하고 지속적으로 내리는 현상은 디플레이션이라고 하지요. 경제학 책을 뒤적거려 보니 디플레이션은 보통 장기적인 경제침체와 동반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경제가 어려우니 소비가 줄고 물건 값은 싸지는 거지요. 지금 세계 경제가 그렇지 않습니까. 미국 경제는 거의 거북이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고 유럽은 제자리에 서 있거나 뒷걸음질 치고 있지요. 미국이나 독일의 소비자물가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달리 방도가 없을 것 같아 보였는지 미국은 그동안 유지해오던 달러강세 정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미국산 제품의 가격은 떨어져 수출이 늘고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품들은 비싸져 안팎으로 미국 업체들은 좋아지겠지요. 그러자 유럽이 난리가 났습니다. 유럽 언론들은 미국이 디플레이션을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수출마저 막히면 어쩌나 하는 것이죠. 유럽중앙은행(ECB)에 금리를 내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구요. 3%로 묶어논 유럽 정부의 재정적자 상한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기부양을 위한 거지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디플레이션이 더욱 위험한 것은 부풀려질대로 부풀려진 자산가격의 거품붕괴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부동산가격의 급등을 들 수 있겠지요. 지금 미국이나 유럽이나 부동산 가격이 요즘말로 장난이 아닙니다. 사상 최고수준이지요. 은행에서는 엄청나게 싼 이자로 구입자금을 대출해주고 개인들은 이걸 이용해 주택 등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지요.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금리가 자꾸 내려가니까 집을 가진 사람들은 싼 이자로 대출을 바꾸고 남은 돈으로 소비를 한다고 합니다.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겠습니까. 2000년부터 주식시장에서 기술주 거품이 꺼지며 장기침체가 시작된 것처럼 부동산시장도 곧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한테는 거의 절망적인 상황이지요.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면 담보가치는 떨어질 것이고 빚은 고스란히 남게 될테니까요. 경기침체로 수입은 줄고 집값은 떨어지고 자연히 소비를 못하게 되면 디플레이션이 올 수 밖에요.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는 이런 현상을 “부채 디플레이션”이라고 불렀습니다. 거품인 줄도 모르고 마음껏 소비하고 은행에서 융자를 내 집을 샀더니 거품이 꺼지고 남은 것은 빚뿐이더라는 거지요. 물가가 하락하면 돈의 가치는 반대로 높아지는 것이므로 채무자가 갚아야 하는 돈은 실질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빚을 못 갚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은행에는 부실이 쌓입니다. 금리가 낮아도 디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금리는 높아지기 때문에 기업의 투자의욕은 저하되고 개인들은 소비를 줄일 테니 경제는 빠르게 악화됩니다. 미국이 최근의 달러약세를 은근히 즐기고 또 달러강세 정책을 포기한 것은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거품이 붕괴된 이후 미국의 기준금리는 6.5%에서 1.25%로 떨어졌습니다. 그뿐입니까. 정부의 재정은 국내총생산(GDP)대비 1.4% 흑자에서 올해 말에는 4.6% 적자가 될 거라고 합니다. 일본이 1991년부터 1996년까지 겪었던 상황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금리도 내릴만큼 내렸고 정부는 잔뜩 빚을 지고 있으니 남은 카드로 달러약세를 꺼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디플레이션과 장기적인 경제침체의 위험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는 결과를 초래하지요. 미국과 무역하지 않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사정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우리 경제도 수출로 고성장을 했고 그 중에서도 미국이 가장 큰 수출시장이었잖습니까. 오히려 유럽보다 더 하지 않겠습니까. 유럽은 다국적 기업도 많고 수출시장도 다양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비중이 매우 크니까요. 미국이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려는 주요 대상은 유럽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받는 충격이 더욱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기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얼마전 국내 모 경제연구소에서 부동산 거품이 굉장히 심각하고 거품이 꺼지면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요지의 연구결과를 내놨다고 하더군요. 한국은행 총재도 “부동산 거품은 꺼질 것”이라고 했지요. 부동산 거품의 붕괴와 디플레이션이 함께 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특히 저처럼 은행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은요. 아무래도 오늘 당장 가족회의를 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차라리 집을 팔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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