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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영세공장 “폭염쯤이야… 진짜 무서운 건 불경기”

경향닷컴 기자I 2008.07.30 21:03:51

ㆍ수십년 쇳밥 “남은건 병든 몸”

[경향닷컴 제공] 29일 오전 11시 서울 문래동 영세공장 밀집 지역 골목 끝의 19.8㎡(6평) 남짓한 공장. 쇠 표면을 쓸어내는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실내는 쇳가루와 불꽃 파편으로 가득 찼다. 김성기씨(48)는 3시간째 식품반죽기계의 스테인 표면을 깎으며 광을 내고 있었다. 김씨는 쇠가공 업체 ‘성인 빠우(쇠를 깎는다는 뜻의 일본말)’의 1인 사장이자 종업원이다.

서울 문래동 영세공장의 1인 사장이자 종업원인 김성기씨가 29일 낮 기계 표면을 깎아내고 있다. 32도가 넘는 폭염 속에 창문 하나 없는 19.8㎡(6평) 공장은 날리는 쇳가루에 찜통 열기로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우철훈기자
바깥 기온은 32.3도. 기계를 잡은 김씨의 작업복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이마에 머리끈을 동여맸지만 땀이 비집고 흘러 눈을 적셨다. 팔뚝과 목덜미엔 온통 쇳가루투성이다. 김씨는 “손에서 불이 난다. 오늘 같은 날은 체감 기온이 50도는 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장에는 선풍기도 없다. 주변 사람들이 쇳가루가 날린다고 항의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공장 앞을 지나던 50대 여성은 “쇳가루 때문에 못 살겠다”며 손사래를 치고 지나갔다.

김씨는 “먹고 살려면 별 수 있나”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19살 때 처음 ‘빠우 기계’를 잡은 김씨는 문래동 ‘마치코바’(町工場·동네공장)에서 쇳밥을 먹은 지 21년째다. 쇳가루 때문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허리·무릎 통증은 만성질환이다.

‘마치코바’는 5인 미만의 영세한 동네 공장을 이르는 일본말. 영등포구청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영등포역과 문래동 사이 골목에 형성된 ‘문래 공단’에는 1800여개의 영세공장이 몰려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3384명으로 집계됐다. 서울은 성동구의 동부 성수공단, 시흥·금천구의 구로공단 등 3곳이 대표적인 ‘마치코바’ 밀집지역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으로 산재 위험의 노출 등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김씨에게 폭염보다 더 괴로운 것은 불경기다. 영세공장이라 고유가·고물가의 파고는 더 버겁다. 올 들어 주문량은 지난해의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김씨는 “전에는 1주일에 4~5일 일했는데 요즘은 1~2일 일한다”며 “식품반죽기계 작업을 꼬박 하면 30만원쯤 받는데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는 뇌경색으로 입원해 4개월 동안 일을 쉬었다. 몸이 성치 않지만 다시 쇠를 깎아야만 했다.

김씨는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누워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고1 딸이 공부를 해보고 싶다기에 5월부터 난생처음으로 과외를 시키고 있다고 했다. 아들딸이 아버지보다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게 유일한 희망이다.

맞은편 영세공장인 ㄱ철강. 66㎡(20평) 규모의 공장에서 장모씨(68)와 아들(37)이 나란히 철판을 절단기로 잘라내고 있었다.

선반·기계부품용 철판을 주문받아 자르고 구부리는 일이다. 70㎏이 넘는 철판을 끌어올려 자르는 것은 성인 남성 2명의 힘으로도 쉽지 않다. 부자의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장씨는 “차라리 겨울이 일하기에 낫다”며 땀을 훔쳤다.

장씨는 철강계통 판매사원으로 일하다 1989년부터 철판 절단을 시작했다. 직원 3명을 두고 먹고 살만 했지만 외환위기 때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금은 종업원 없이 아들이 가끔 나와 일손을 돕는다. ‘경기가 어떠냐’고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장씨는 “월세를 내고 있는데 이곳도 곧 개발한다는 얘기가 있어 내쫓기게 될 판”이라며 “어디론가 옮겨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문래공단은 공동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개발요건이 완화돼 곧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민주노동자연대 등 6개 사회단체는 영세공장 노동자들의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곽이경 사무차장은 “영세공장 노동자들은 노동 환경뿐 아니라 삶의 조건도 열악하다”며 “실태조사를 통해 이들의 주거권·개발문제·건강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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