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서양에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란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구요. 우리는 미국을 `혈맹`이라고 부릅니다. 피를 나눈 형제같은 동맹국이란 얘기죠.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적대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말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인지, 진정한 친구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이겠죠. 안근모기자입니다.
지난 15일자 뉴욕타임즈에는 "왜 미국을 미워들하지?(Why Do They Hate Us?)"란 제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9.11 테러 이후에 세계 각국의 미국 혐오가 상당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면서 쓴 글입니다.
이런 반미감정은 테러리즘의 원인이요, 전세계에서 미국인의 신변을 위협하는가 하면, 외교정책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건데, `그럼 미국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란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성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칼럼의 요지였습니다.
필자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씨는 몇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반미주의가 예외적으로 쇠퇴일로를 걷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칼럼에서 "미국이 한국의 억압적인 군부정권을 더이상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식되면서 반미감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의 분석이 `교훈`을 제시한다고 했더군요.
칼럼은 말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나 파키스탄에서도 과격한 성직자들이 미국을 비난할 자유를 갖게 된다면 한국에서와 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성과`와 `교훈`이라……
하기야 칼럼의 필자가 본 대로 한국에서는 과거처럼 수십만명의 군중이 모여 성조기를 태우는 모습을 더이상 구경하기 힘들게 됐습니다. 맥도널드에 돌을 던지거나 불을 지르지도 않고, 미국에 유학을 가려고 줄을 섭니다.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애들의 입에 영어를 우겨넣는 부모들이 유행병자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필자의 눈에는 `성과`로 비치는 모양인데, 그러나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우할 위치에 있는 신문사 칼럼니스트의 시각이 그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면 실망스럽습니다.
성조기를 태우는 과격분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반미주의`가 이제는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피해의식`과 뒤섞인 형태로 보편화된 것 아닙니까? 6.25동란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던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미국이 보여준 행동이 `진정한 친구`의 그것이었던가를 묻고 싶네요.
피를 말리며 하루하루 빚막기에 쫓기던 98년초 우리를 상대로 수백억 달러의 고리채로 `떼돈`을 벌려 했던 미국의 투자은행이 있었습니다. 금융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에 몰린 우리 정부로부터 대형 시중은행을 `완벽한` 위험보장을 받아 사들인 펀드도 있었죠.
대형 투신사에 투자하겠다면서 2년이나 끌며 `미래손실까지 100% 보장하라`며 떼를 쓰더니 끝내 손을 털고 가버린 금융회사도 있습니다. 그 전엔 자동차회사를 사겠다면서 잔뜩 기대를 부풀려 놓고서는 결국에는 "없던 일로 하자"고 해 우리를 곤경에 내몬 회사도 있죠.
지금도 두 개의 거대 미국기업이 우리 회사를 하나씩 사겠다면서 입씨름을 하고 있습니다만. 한 쪽에서는 "빨리빨리 팔아야 너희들에 이롭다"고 바람을 잡으면서 말이죠. 용산기지 얘기는 접어 두겠습니다.
집안사정이 어려워 가재도구 몇개를 좀 팔려고 내놨는데, 친한 친구란 녀석이 찾아와서는 막무가내로 거저달라고 하는데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반면에 한국의 은행들이 다들 위태롭다던 어려운 시절에 수천억원의 자금을 선뜻 투자하면서 `한국의 밝은 미래`를 전 세계에 대변해준 지구 다른 한 편, 즉 유럽인들이 있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투자한 걸 볼까요? 전에만 해도 가장 큰 손이었던 미국은 정작 98년이후 작년말까지 135억달러 투자한 데 그쳤지만, EU가 가져 온 돈은 164억 달러나 됐습니다.
미국을 왜 미워하냐구요? 이걸로 대답이 좀 됐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