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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김상윤] “에너지 정책이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작년만 해도 신재생에너지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력연구소 소장은 최근 대선주자들의 차기 에너지 정책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최근 그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20%까지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차기 정부에 주장했다. 현재 신재생 발전 비중이 1%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목표다. 그럼에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심지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204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좀더 과격한 공약을 내놨다. 대선에서 유례없이 에너지 공약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탈원전·석탄 정책 ‘대동소이’
16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에너지정책은 큰틀에서 대동소이하다. 현재 제기된 공약으로보면 누가 되더라도 탈(脫)원전·석탄과 함께 신재생에너지로 빠른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에너지정책을 내놓지 않았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마저도 지난 15일 울산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원자력 발전소 짓는 일을 지양하겠다”며 “가능하면 신재생 에너지쪽으로 에너지 정책을 바꿀 생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선주자들의 에너지 공약이 다소 급진적으로 바뀐 배경에는 최근 한반도에 미세먼지에 이어 지진까지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유권자들이 환경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표’가 중요한 상황에서 누구나도 환경 문제를 주요 화두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약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나라 에너지 패러다임은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현재 원전, 화전 등 대규모 ‘중앙집중형 발전방식’은 사라지고 ‘분산형 발전방식’으로 전환된다. 도시의 대량 에너지 소비를 위해 지역에 대규모 발전소를 짓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 도시 안에서 에너지 발생 및 소비를 모두 해결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낮은 단가 중심의 경제급전방식도 환경급전 방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급전은 ‘전기를 공급한다’는 뜻으로 경제성만 따져 비용이 가장 저렴한 발전소만 돌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선순위도 환경성을 검토하는 식으로 갈 전망이다. 이미 지난달에는 ‘환경 급전’을 반영한 전기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된 상태다.
◇전기료 인상 ‘불편한 진실’은?
문제는 급격한 신재생 에너지 전환은 비용 상승과 전력 불완전 수급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환경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공감대가 있더라고 비용 상승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후보자들의 공약은 ‘허황된 꿈’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후보자들이 신재생에너지 공약을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실행방법이 수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흐지부지 됐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그간 전기료 인상 여부를 숨겼던 대선후보들도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는 있다. 윤종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지난해 전기료 누진개편을 하긴 했지만 신재생에너지 전환이 박차를 가하면 또다시 전기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긴 하다”면서 “차기 정부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터놓고 얘기를 해야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유훈 국민의당 전문위원 역시 “전력수급계획 등을 점검해 수정안이 만들어져야 전기요금 인상분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가 나올 것 같다”면서도 “다만 정부 예산은 신재생에너지 R&D쪽에 대폭 투자하면서 기술개발에 따라 전력 비용을 낮추는 식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유력 대선 후보 둘다 신재생에너지 대전환을 촉구하고는 있지만 전기료 인상 시나리오를 수반한 현실적인 실행안은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신재생 에너지 2030년 20% 보급목표는 환경단체 입장에서는 당연한 수준의 목표이겠지만 전통적인 에너지 정책에 비춰보면 대단히 과감한 목표”라면서 “신재생 확대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은 하고 있지만 비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활발하게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