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격세지감`에 울상짓는 외환은행

민재용 기자I 2010.12.03 16:03:33
[이데일리 민재용 기자] "외환은행이 동네 북이냐?"

현대건설(000720) 매각을 둘러싼 잡음으로 외환은행이 채권단내에서는 물론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등 입찰 참여자에게도 비난을 받자 울상을 짓고 있다.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 주관기관인 외환은행(004940)은 당초 현대건설 조기 매각을 통해 장기간 미뤄졌던 매각이익을 챙기고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현대그룹과 재무구조개선 약정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현대그룹과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대건설 매각 관련 잡음이 커지자 사면초가에 몰린 형국이다. 현대건설 최대주주인 정부 산하의 정책금융공사가 외환은행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다른 주거래 고객인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에서 1조원대 예금을 인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러다 현대그룹에 이어 현대차그룹도 `주거래은행 교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한 지난 8월 외환은행을 상대로 주거래은행을 바꾸겠다고 이미 통보한 상태다. 현대그룹의 이같은 반발은 부채비율 축소 등이 포함되는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게 되면 현대그룹 전체의 경영권 향배가 달린 현대건설 인수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외환은행은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난 2006년 이후 현대건설의 조속한 매각을 원해왔다. 하지만 당시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등 다른 채권단의 반대로 4년여간 매각 작업에 돌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산업은행에서 분리되면서 새로운 주주가 된 정책금융공사의 찬성으로 올해 6월 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본격화됐을 때 이를 가장 반겼던 것도 외환은행이었다. 당시 외환은행 매각 담당자는 "10년 묶은 체증이 한번에 내려가는 것 같다"며 "채권단간 협의를 통해 현대건설 매각 작업을 조속히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을 둘러싼 매각 잡음이 생겨나는 이유를 들여다 보면 아이러니하게 `조속한 매각 원칙`이 화근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환은행이 다른 채권단의 동의없이 단독으로 현대그룹과 현대건설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외환은행은 "아무 이유없이 MOU체결을 미룰 경우 현대그룹으로부터 법적 소송을 당할 수 있어 부득히 MOU를 체결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채권단내에서는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채권단이 현대그룹의 자금출처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던 만큼 아무 이유없이 MOU 체결을 미뤘다고는 볼 수 없다"며 "외환은행이 단독으로 MOU를 체결한 것은 현대건설 매각 작업을 계속 진행시키려는 전략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외환은행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선협상대상자 평가 때에도 너무 서둘렀다는 지적이다.
 
채권단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 명의로 예치된 1조2000억원의 예금을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다는 이유로 현대그룹의 자기자금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해외에 예치된 거액의 예금이었기에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에 대비해 자금출처 등을 철저히 따져봤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외환은행은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발표한 이후 시장에서 자금출처에 대한 논란이 일자 "자금출처까지 채권단이 밝혀야 할 이유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1조2000억원의 예금이 나타시스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으로 일체의 담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등 자금출처 의혹이 더욱 커지자 외환은행은 뒤늦게 현대그룹에 대출계약서를 내라고 요청해 현대그룹과 다시 대립하고 있다.
 
현대건설 경영권이 누구의 품에 안기느냐에 따라 현대그룹-외환은행, 현대차그룹-외환은행의 주거래 관계중 하나는 단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최악의 경우 매각이 전면 중단되고 상호 비방과 무더기 소송전이 벌어질 경우 두 그룹의 주거래 관계가 모두 끊기는 상황도 벌어질 수도 있다. 

은행권에서는 벌써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주거래 관계를 새롭게 유치하기 위해 시중은행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현대건설 매각을 손꼽아 기다렸던 외환은행은 정작 매각 작업이 이뤄지자 주요 고객만 놓칠 처지에 몰린 셈이다.

은행권에서는 기업들이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거래관계를 볼모로 은행을 압박하는 모습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기업과 거래 관계를 일시에 청산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행태를 비난하기에는 그 정당성이 부족해 보인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수조원대 예금과 대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 앞에서 이제 은행이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과거 대출을 빌미로 무조건 은행이 `갑`이던 시대는 이제는 옛날 얘기로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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