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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재직 시절 미국 스탠퍼드대에 송금한 200만달러(약 24억2900만원)를 검찰이 최근 국고로 환수했다. 퇴임 후 스탠퍼드대에 한국학 관련 보직을 만들어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빼돌린 국정원 예산을 되찾은 것이다. 미국 정부가 `원 전 원장이 국고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여 환수 과정에 협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고형곤)는 원 전 원장이 2011년 7~12월 스탠퍼드대에 송금한 국정원 특수활동비 200만달러를 지난달 중순 전액 환수했다고 9일 밝혔다. 원 전 원장은 지난해 8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혐의로 추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퇴임 이후 미국에 정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탠퍼드대에 국고를 출연하도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원 전 원장은 재직 시절 국정원 위장사업체 명의로 된 계좌의 특활비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계좌로 이체한 뒤 이를 200만달러로 환전해 스탠퍼드대 계좌로 보냈다.
그는 처음엔 스탠퍼드대 아·태 연구소에 미국 내 한국 의견을 대변하는 연구책임자 ‘코리안체어’ 설치를 추진했다. 이 계획이 무산되자 ‘한국학 펀드’ 조성 명목으로 이 자금을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5~6월 서울중앙지법에 200만달러 환수를 위한 몰수·추징보전 청구를 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200만달러 안에 스탠퍼드대 투자자산이 섞여 있고, 한국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 대학에 몰수 청구 가능 여부도 문제가 됐다.
이후 검찰은 미국 정부 및 스탠퍼드대와 직접 협상에 나섰다. 환수를 둘러싼 3자 협상은 1년여 진행됐다. 검찰은 미국 측에 200만달러는 국정원 돈이고 원 전 원장이 불법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사실을 전했다. 스탠퍼드대는 검찰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달 중순 200만달러 전액을 한국에 돌려줬다.
미국이 환수에 협조한 사실은 재판에서 원 전 원장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원 전 원장은 200만달러의 국고손실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퇴임 후 미국 정착을 위해 국고를 사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보고 지난해 재판에 넘겼다. 지난 6월 첫 공판기일에서 원 전 원장은 미국 내 `서부 전략포럼`을 시작하기 위한 국정원의 예산 지원이라며 국고손실 혐의를 부인했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댓글공작을 지시한 혐의로 지난해 징역 4년형을 확정받은 원 전 원장은 국고손실 사건 외에도 박원순 서울시장 사찰, PD수첩 제작 방해 등 9건의 1심 재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