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승관 이성기 기자] 신한금융그룹에 이어 KB국민금융, 하나금융 등이 올해 상반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국내 금융권도 반환점을 돌았다. 하나금융은 특히 외환은행 노조와 조기 통합에 전격 합의하면서 오는 9월 또 하나의 ‘메가 뱅크’ 탄생을 예고한 상태다. 이에 각 금융권 수장들의 경영 철학이나 올해 ‘화두’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의 집무실에는 자신만의 경영 철학이나 ‘화두’를 담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데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시 그 의미를 살펴봤다.
◇단골 메뉴는 고사성어…트루먼 대통령 좌우명도
올초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김병호 하나은행장과 김한조 외환은행장에게 ‘특별한 선물’을 건넸다. 금융위원회에 하나·외환은행 합병 예비인가를 신청할 무렵이었다. 김 회장이 준 선물은 탕평비에 새겨진 ‘주이불비 내군자지공심 비이불주 식소인지사의(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란 글귀. ‘신의가 있고 아첨하지 않음이 군자의 마음이요 아첨하고 신의가 없음은 소인의 삿된 마음’이란 뜻으로 “하나와 외환이 서로 잘 화합하고 통합을 이뤄 골고루 인재를 등용해 인화를 이루자는 의미를 담았다”는 게 하나금융 측 설명이다. 두 행장은 글귀를 집무실에 걸어두고 ‘화합’과 ‘통합’을 마음에 새겼다. 우여곡절 끝에 하나금융은 최근 외환 노조와 조기통합에 전격 합의했고 ‘한 지붕 두 가족’ 시대 마감을 앞두고 있다.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취임 당시 밝힌 목표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론 ‘G.P.S(Globalization, Platform, Segmentation), 스피드업(Speed-up)’을 집무실에 걸어두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역량과 스마트금융 경쟁력을 강화하고 플랫폼 경영을 도입해 글로벌 은행으로서 위상을 다지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조 행장은 취임 후 첫 인사를 단행하고 하반기 경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하고 있다.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신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는다’는 뜻으로, 서로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KB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돼 최선의 결과를 이뤄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았다. 최근 LIG손해보험 인수를 마무리 짓고 ‘KB손해보험’으로 출범시킨 KB금융은 시너지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윤 회장은 “은행과 카드, 증권에서 서민금융과 손해보험에 이르기까지 전 금융권에 걸친 라인업을 구축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한조 행장 집무실에는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좌우명으로 삼은 말이 있다. 지난해 취임사에서도 언급한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를 책상 위에 명패처럼 세워 두고 있다. 통합을 앞두고 뒤숭숭한 분위기를 다잡고 외환의 ‘큰 형님’으로 후배와 조직을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김주하 농협은행장이 올해 던진 화두는 ‘개원절류(開源節流)’.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순자가 제시한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방도로 ‘물의 근원을 넓게 열고, 흐름을 조절하라’는 뜻이다. 즉 끊임없이 소득 재원을 개발하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행장은 최근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상반기 손익목표를 달성한 데 대해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겹도록 고맙다”며 임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반 걸음 앞서 나가야…선도 자세 강조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영선반보(領先半步)’의 자세를 강조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남들보다 반 걸음 앞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 행장에게 무엇보다 큰 숙제는 임기 내 민영화 완수인데, 정부가 민영화를 위해 과점주주 매각 방식을 추가로 도입하는 등 다섯 번째 칼을 빼들었지만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 방침은)결국 투자자를 알아서 찾아 데리고 오라는 얘기인데 정부가 민영화 의지가 있긴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행장은 자사주 1만주를 추가 매입하는 등 민영화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평소 ‘소통은 신뢰의 산물’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은 ‘말’에 대한 철칙이 있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남의 말을 경청하며, 말을 옮기지 않는다는 세 가지가 그것인데 소통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될 때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서다. 권 행장은 부친상도 대외에 알리지 않은 채 지난 주말 조용히 발인을 마쳤다.
한편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에게 ‘금융개혁 혼연일체(金融改革 渾然一體)’라고 적힌 액자를 선물했다. 호남 지역 서예의 대가 학정 이돈홍 선생의 작품으로 금감원장 집무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다. 진 원장은 “하루에도 수차례 글귀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생명보험협회장실에는 고(故) 배종승 전 한국투자신탁 초대 사장이 직접 써서 전한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 然後知松栢之後彫也)”가 여러 협회장들의 경영철학으로 자리잡고 있다. 논어 공자편의 한 구절로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중에 시듦을 안다’는 의미다. 보험시장의 어려움 속에서도 생명보험의 참뜻을 잃지 않고 국민에게 보답해야한다는 ‘보험보국(保險保國)’의 의지를 담은 글귀라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