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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쟁 발발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국제사회의 비판과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과 대한민국의 주도권에 무게를 둔 이른바 ‘베를린구상’ 기조를 유지했지만 대내외적으로 코리아패싱(한반도 문제에서 대한민국 소외현상)이라는 거센 비난에 끊이지 않았다.
◇北, 평창 참가 변화의 서곡…남북, 특사 교환 이후 정상회담 결실
변화의 서곡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와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핌 참가였다. 문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빛을 발한 것이다. 이어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참석을 계기로 김 김여정·김영남·김영철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하면서 남북관계 주요 현안 등을 논의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급진전의 길을 걸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지난달 10일 특사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 문 대통령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김여정 특사는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요청했다. 사실상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대답은 그리 오래 걸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폐막 일주일여 만인 지난 5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북특사단을 파견했다. 이 자리에서 남북은 4월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2000년 6.15 정상회담, 2007년 10.4 정상회담에 이어 11년 만에 남북정상간 만남이 재개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일 대북특사단 만찬에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또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하면서 대화국면에서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의 핵동결을 선언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부담을 줄여준 것이었다.
◇‘워싱턴발 깜짝 뉴스’ 북미정상회담, 文대통령 중재 노력 빛났다
남북합의는 기대 이상의 낭보였지만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 때문이다. 이는 북미관계 개선 없이는 남북관계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풀어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후 불과 3일 만에 미국 워싱턴에서 깜짝 놀랄 뉴스가 전해졌다. 대북특사단으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9일 오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 백악관 브리핑에서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다. 정의용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금년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북미정상회담 합의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더구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한국전쟁과 분단 이후 북한 최고 지도자가 미국 현직 대통령을 만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북미는 그동안 갈등 과정 속에서도 대화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전제조건을 달았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한미군사훈련의 중단을, 미국은 북한의 명확한 비핵화 조치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북미의 주도권 다툼을 중재한 것은 문 대통령의 노력이다. 북한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북미대화를 설득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김여정 특사와의 면담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간의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미국과는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공동보조를 취해왔다.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대북특사단 파견 계획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도 한미동맹을 의식한 조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핵·미사일 실험 자제 약속 △한미연합군사훈련 이해 등 정의용 실장의 브리핑을 들은 뒤 북미정상회담 수용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