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글리츠 "세계 경제, 예비타이어 없는 자동차…문제 발생시 속수무책"

김혜미 기자I 2020.06.26 11:55:55

스티글리츠 "코로나로 시장경제 결함 드러나"
"향후 회복력있는 경제 구축..정부 적극대응 중요해져"
"코로나 이전경제로 돌아가선 안돼..국제공조 중요"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상호협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모든 국가에서 방역이 제대로 돼야 하고, 각국의 강력한 경제회복이 전제돼야 글로벌 경제회복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보건과 환경, 기후 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 구명보트에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타더라도 같이 노를 저어 안전지대로 가야 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피아대 석좌교수는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하나은행 주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금융의 미래’ 국제컨퍼런스 제 1세션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날 연설은 사전녹화된 동영상으로 상영됐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코로나19가 이전부터 발생했던 트렌드가 가속화되면서 국제사회가 직면한 도전과제를 명확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세계는 이미 ‘초세계화’로부터 뒷걸음질치고 있었다”며 “2008년 이후 전세계 GDP(국내총생산) 대비 외국인직접투자는 모든 국가에서 성장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전세계 GDP 대비 교역량은 감소했다. 생산 구조의 성격이 제조업 기반에서 서비스 기반으로 전환하고 있었으며 코로나19는 이를 가속화시켰다”고 말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특히 각국 경제의 회복력이 부족한 상황이었음을 지적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문제가 없을 때는 잘 작동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회복하지 못하는 예비 타이어 없는 자동차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회복력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단기 수익을 위해 장기 안정성을 훼손해 온 시장 경제의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몇 분이라도 아끼기 위해 생산역량을 갖추지 않은 채 외부 의존성을 높였고, 그 결과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마스크와 산소호흡기, 개인보호장비 등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자체 생산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에는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중시하는 회복력 있는 경제를 구축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앞으로 시장과 정부, 시민사회 간 더욱 균형잡힌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3년간 미국 정부가 과학예산을 30%씩 줄인 탓에 질병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역량이 감소했다면서 과학과 진실에 입각한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그는 모든 국가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코로나 사태의 예방과 종식을 위해서는 모두에게 접근가능하고 공유될 수 있는 지식이 정말 중요하다. 특허 풀을 만들어 전세계 어디서든 접근하고 의약품이 최저가에 공급될 수 있게 해야한다”며 “일부 백신 보호주의나 부유층에 최우선 접근성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경제적인 합리성과 인도주의에 기반한 국가별 채무조정이 이뤄져야 하며, 금융부문이 전세계의 코로나 극복을 돕고 지원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번 불황은 장기적이고 극심할 것”이라며 “대공황에서 회복하는 데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코로나 대응이) 통화정책으로는 역부족이며 재정적 솔루션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전 경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평등하고 친환경적인 경제, 지식을 토대로 한 경제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공조”라고 말을 맺었다.

한편 이날 컨퍼런스에는 200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도 동영상 기조연설로 참석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각국이 기후변화 문제에 소홀해졌다면서, 경제성장을 위한 혁신을 불러올 활력이나 정신, 지난 100년간 성장을 이끌어 온 가치를 회복하지 않으면 큰 대가를 치룰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사진 :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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