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스마트TV를 둘러싸고 벌어진 KT(030200)와 삼성전자간의 분쟁은 배우과 무대만 다를 뿐, 지난해 방송 송출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지상파 방송국과 케이블TV간의 갈등과 이야기 구조가 대동소이하다.
‘해묵은 갈등→협상 부재→실력행사→정책당국의 뒷북대응’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판박이다. 특히 ‘송출 또는 접속차단’에 나선 쪽이 대상을 차별화해 상대 진영의 내분을 유발하고 소비자를 인질로 상대를 압박하는 전술은 표절 수준이다.
5일만에 막 내린 이번 활극에서 KT는 기획과 연출을 맡고 주연까지 소화해내며 가장 큰 소득을 얻었다. 여론의 관심 밖이던 스마트TV의 트래픽 문제를 공론화한데다 삼성전자(005930)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삼성에 KT가 만만한 회사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가외 소득이다.
강제로 무대에 끌려나오기는 했지만 삼성 역시 협상 테이블에 얼굴을 비추기로 한 것만으로 접속차단 조치를 끝낸 만큼 크게 손해본 건 없다.
존재감 없는 ‘발연기’로 욕을 먹던 방송통신위원회도 간만에 체면치레를 했다. 삼성전자와 KT라는 거대 기업간의 갈등을 중재, 단기간 내에 분쟁을 종결시켜 밥값을 했다. 다만 사전 대응에 실패해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했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 활극에 스마트TV를 사고 인터넷 사용료를 내며 ‘제작비’를 부담한 소비자는 철저히 외면 당했다.
KT는 스마트TV 접속차단으로 30만명이 넘는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지만 사과 한마디 없다. 어떤 명분이라도 소비자 피해를 협상용 카드로 사용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삼성 역시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KT가 스마트TV가 유발하는 트래픽에 대한 망 대가를 요구하자 삼성전자는 “고속도로가 혼잡해진다고 자동차 회사에 통행료를 부담하라는 꼴”이라고 맞섰다.
어찌보면 맞는 얘기다. 하지만 통신사가 스마트TV 이용자에 한해 초고속인터넷 요금을 인상하면 가전회사들도 타격을 입는다. 게다가 스마트TV의 경쟁력은 인터넷 망을 통한 앱 서비스에서 나온다. 수수방관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KT는 국내 전자·정보통신산업을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TV를 팔고 서비스를 팔아서 살아간다. 소비자를 ‘봉’으로만 여겨서는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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