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최현석기자] 최근 전국에 로또복권 열풍이 한창입니다. 기업들이 환위험 관리없이 환차익을 바라는 것 역시 복권 대박을 바라는 요행심리와 다를 바 없을 겁니다. 특히 이같은 요행 심리를 정부가 부추기고 있다면 큰 문제겠죠. 경제부 최현석기자는 그렇게 보고있답니다.
이번주 로또복권 1등 당첨금이 7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며 판매량이 2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전국이 `로또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로또복권 당첨을 바라며 미리 사업설계를 하거나 이민을 준비한 여권발급에 나서는 등 허황된 일들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일상업무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누구든 원하는 목표를 쉽게 얻으면 스스로 문제를 풀 의지나 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굳이 "어린이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든지, 무엇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게 내 버려 두는 것"이라는 루소의 격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새삼 로또 열풍과 루소의 격언을 들먹이는 건 최근 외환시장에서 환율 움직임 정체로 기업들의 환리스크 관리 의지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어린이에, 외환업무를 대박을 노리는 요행에 비유해 기분이 언짢은 분들도 있겠으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환리스크 관리 부문에서 `복걸복`에 기대는 초보 수준의 기업들이 많은 편입니다.
무역협회 한 관계자는 "골드만삭스같은 국제투자은행을 초청해 환리스크 관리 세미나를 하려고 해도 중소 무역업체들에게는 수준이 너무 높아 뜬 구름잡기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금감원 설문조사에서 우리 기업중 절반정도가 환위험 관리를 하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선물회사 관계자들은 체계적으로 환위험 관리에 나서는 기업들은 20% 수준에 불과한게 현실이라고 지적합니다. 그야말로 환관리 방안 하나 마련하지 않은 채 복권 당첨식의 환차익을 노리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올들어 기업들의 환리스크 관리 노력은 지난해만도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당장 은행권 대(對)기업전담(Corporate) 딜러들의 한숨소리에서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초 1230원대로 올랐던 달러/원 환율이 올들어 1160원대까지 떨어졌으나 지난달말 외화예금은 136억달러로 증가하며 사상최고치에 육박한 점도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환율 하락기에 기업들이 수출후 유입되는 달러를 매도하지 않은 점이 외화예금 증가의 한 원인이 됐으니 말이죠. 지난해 당국개입에도 불구, 환율이 1330원대에서 1160원대로 수직낙하하자 달러매도에 치중하며 외화예금을 100억달러 아래로 떨어뜨렸던 것과는 반대되는 현상입니다.
글머리에서 언급한 어린이(기업)가 무엇(환위험관리)이든 손에 넣을 수 있게 내버려두는 주체는 과연 어디일까요? 은행이나 선물회사 외환 담당자들은 당장 외환당국을 주범(?)으로 지목합니다.
그렇다면 당국이 어떤 방법으로 손에 쥐어주는 것일까요? 환율의 급격한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제한해 환손실을 방지해 주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죠.
기업들은 우리나라 당국이 수출을 떠받치기 위해 1170원대 아래 환율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 당국이 최근 시장 직접개입을 시인하며 달러/원 방향의 이정표가 되는 달러/엔 하락을 막고 있는 마당이니 우리 기업들이 굳이 환리스크 관리를 한답시고 선물환 매도 등에 나설 필요가 없는 것이죠.
최근 "환율안정을 위해 이달안으로라도 외평채를 최대 1조원 규모로 발행할 수 있다"고 한 재정경제부가 지난달초까지 보유중이던 2조5000억원의 외평기금 잔액을 다 소진했는 지 여부와 한국은행 외환보유고가 한달새 15억달러가량 증가한 원인을 추적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1170원대 환율을 유지하기 위한 당국의 직간접적 개입이 이뤄졌다는 것은 이미 딜러들 사이에서는 주지의 사실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로또 복권을 들여와 한탕주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으로 기업의 환리스크 노력을 약화시키고 거래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죠.
중기적 환리스크 관리는 아니더라도 기준율에 기댄 기업들의 외환매매 형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더군요. 당장 환율이 떨어지더라도 `내일 매매기준환율 위에서 달러를 팔면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팔지않고 기다리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로 매일 외환시장 거래에 참여하는 대기업들에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다음날 환율이 폭락할 경우 되돌릴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을 들을 수 있는 행태입니다. 최근 환율이 1170~1180원대에 머물고 있으나 은행 딜러들은 환율이 언제 급등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라 거의 매일 포지션을 중립화시키고 있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죠.
앞으로 환율이 급상승할 경우 몇 달간 외화예금에 달러를 예치해온 기업들은 높은 수준에서 달러를 매도해 차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나 당국의 환율하락 방어 조치를 믿고 환관리에 느슨한 모습을 보이는 건 복권당첨식 요행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만약 당국이 막지 않는다면, 또는 당국개입이 추세를 거스르지 못한다면..."이란 생각을 항상 갖고 착실히 환리스크 관리에 나선다면 달러선물, 옵션, 스왑 등 관련 시장도 한층 성숙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당국이 기업의 환관리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환율 속도조절이나 레벨제한 차원의 개입을 자제하는 모범을 먼저 보여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