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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판사가 사라지면 좋은 재판이 되는 건가요?"

한광범 기자I 2021.09.02 13:00:00

경력 5년 유지법안 부결에 법원 내부 우려 목소리
"타영역선 젊은층 영입하는데 법관 자격 없다니…"
"젊은층 시각 사라지는 재판이 국민 위한 것인가?"
인력난 우려…"자격 갖춘 지원자 더 줄어들 수도"

2019년 10월 신임 법관 임명식.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판결에 30대의 시각이 사라지는 것이 정말 국민들을 위해 옳은 방향인가요?”

판사 임용 최소 법조경력을 현재와 같이 ‘5년’으로 유지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가운데, 30대 후반의 A판사는 이 같이 반문했다. 법원 내부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부결을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A판사는 “법조일원화가 처음 추진되던 당시와 지금의 법원의 인력구조는 전혀 달라졌다”며 “소년 재판장이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상황 등을 감안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2013년 본격화된 법조일원화 정책으로 판사는 일정 정도의 법조경력이 있는 법조인 중에서 선발된다. 판사 최소 법조경력은 2013년 3년을 시작으로 2018년 5년, 2022년 7년, 2026년 10년으로 순차 확대된다. 과거 다른 법조 경험 없이 사법연수원을 수료 후 곧바로 판사로 임용되던 시스템에 변화를 준 것이다.

향후 법조경력 10년 이상 법조인 중에서만 판사를 임용할 경우 초임 판사의 나이는 최소 30대 후반이 된다. 병역의무 이행과 민간경력, 법학전문대학원이나 변호사시험 재응시 등을 감안하면 평균적으로는 40대 초중반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30대 후반 이하의 판사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소년 재판장 넘어 40대 재판장도 감소할듯

40대 후반의 B부장판사는 “젊은 세대의 시각이 분명 있다. 30대 배석판사들 덕분에 합의부에서 다른 결론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연륜이 물론 중요하지만 다양한 시각도 그만큼 중요하다”며 “다양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법원에 30대 판사들이 사라지는 상황이 국민들 재판권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법조일원화 추진 배경에는 사회 경험이 부족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젊은 재판장을 뜻하는 이른바 ‘소년 재판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소년 재판장은 평생법관제 정착으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2010년대 이후 법원 내부에 빠르게 평생법관제가 정착되며 퇴직 판사수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판사 평균 연령도 빠르게 높아진 영향이다.

지난 7월 1일 기준 전국 판사 2994명 중 부장판사 이상은 1518명으로 절반을 넘으며 판사들의 합의부 배석 기간도 자연스레 길어졌다. 2000년대만 해도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판사로 임용돼 1~2년 정도의 배석 기간만 거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단독 재판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경력법관들이 단독 재판장을 가기까지의 배석 기간은 평균적으로 7년이다. 임용 전 경력 5년을 합치면 법조경력 12년 정도는 돼야 재판장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 C변호사는 “정년까지 근무하길 희망하는 판사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향후엔 배석 기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며 “판사 최소 경력이 10년 이상으로 늘어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40대 단독 재판장마저 찾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법연수원 내 정의의 여신상. (사진=이데일리DB)


◇경력 상향시 지원자 증가? “희망 불과”

법원 내부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인력난이다. 즉, 경력 10년 이상인 우수한 법조인들이 과연 판사로의 전직을 희망할 것이냐는 우려다. C변호사는 “판사에겐 재판받는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이 달려있다. 당연히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뛰어난 실력을 겸비해야 한다”라며 “법조경력 10년 이상이면 안정화시기에 접어든다. 단순히 사명감만으로 업무강도가 훨씬 강한 법원으로 가려는 우수 법조인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3년 법조일원화 이후 판사로 임용된 경력 법조인 중 10년 이상은 △2013년 0명 △2014년 1명(1.4%) △2015년 3명(2.8%) △2016년 0명 △2017년 0명 △2018년 5명(13.9%) △2019년 5명(6.3%) △2020년 5명(3.2%)에 불과했다. 대법원 측은 “경력 10년 이상 지원 비율의 경우도 법조일원화 이후 감소해 2019년 7%, 2020년 8%에 불과해 뽑고 싶어도 뽑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선 최소 경력을 상향할 경우 결국 경력 10년 이상 법조인 지원이 그만큼 확대되지 않겠냐고 전망한다. 이에 대해 법원 내부에선 “희망 섞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B부장판사는 “판사 임용은 단순하게 지원자 중 1등부터 100등을 뽑는 게 아니다. 법원이 정해놓은 기준을 넘는 법조인을 선발하는 것”이라며 “지금과 같이 경력 10년 이상 지원자 중 기준을 넘는 인원이 적으면 한 자릿수만 선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개정안 반대 측에선 법조일원화를 원래대로 추진하되 ‘판결문 작성 변경’, ‘처우 개선’ 등을 통해 우수한 경력 법조인들이 판사직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판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처우 개선의 경우 ‘사회적 분위기’와 ‘재정 당국의 반대’ 등을 감안할 경우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업무 방식 변경에 대해선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D부장판사는 “재판 시스템 개혁은 재판 외 시스템 개혁보다 훨씬 어렵고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일단 추진하고 결과물을 보자’는 식의 주장은 무책임의 극치다. 결국 피해는 재판을 받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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