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신평, 빠른 등급 조정…한기평 후행 최다
이데일리가 26회 SRE 평가기간인 올해 4월5일부터 9월30일까지 회사채 신용등급과 등급전망(Credit outlook), 감시(Creditwatch) 조정 내역을 조사한 결과 NICE신평이 9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기평 8건, 한신평 7건으로 뒤를 이었다. 후행은 한기평이 12건에 달했고 이어 NICE신평(8건), 한신평(6건) 순이었다. 평가일 기준 3일~3개월 내 먼저 조정 시 선행, 따라오는 경우는 후행으로 판단했다. 1~2일 차이는 행정 처리에 걸리는 시간, 3달 초과는 관점이 다른 것으로 해석해 선·후행에 포함하지 않았다.
선행의 경우 발 빠른 대응력을 보여줄 수 있고 이슈 선점이라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신평사간 속도 경쟁은 지속되고 있다. NICE신평은 주요 기업의 신용등급 선제 하향 조정을 통한 이슈 선점에 나섰다. 8월16일에는 방산 비리, 분식 회계 혐의로 논란을 빚던 한국항공우주(047810) 신용등급(AA-)을 가장 빨리 하향 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수리온 사업 차질과 회계정보 신뢰성 저하가 이유였다. 5월16일에는 호텔신라(008770)(AA)에 대해 면세점 수익성 하락에 따른 재무안정성 지표 저하를 이유로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당시 산업 전반에 확산되던 사드 우려가 신용도에도 영향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한신평도 이슈 선점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NICE신평보다 하루 먼저 호텔신라 등급전망을 낮췄으며 6월에는 우수한 신용등급의 호텔롯데(AA+)의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호텔신라처럼 면세점 사업 우려와 함께 기업공개(IPO) 지연을 지적했다. 또 4월에는 대우조선해양(042660)의 채무조정 결과를 바탕으로 신용등급을 ‘B-’에서 ‘CC’로 2노치 강등했다. 회사채 원리금 손상 현실화로 하향 조정이 예상되긴 했지만 가장 먼저 두 계단이나 낮춘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사업 부진과 분식 회계로 조선업 신용도 위기를 자초하며 신용등급이 꾸준히 내려가던 상황에서 결국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담은 ‘C급’까지 추락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한기평과 NICE신평은 6월이 돼서야 신용등급을 ‘CCC’로 한단계 하향 조정했다.
한기평은 포스코건설 신용등급과 SK E&S 등급 전망을 선제적으로 낮추기도 했지만 상대적으로 이슈와는 거리를 두는 분위기였다. 반면 대우조선해양, 호텔신라, 호텔롯데, 한국항공우주산업 등의 신용등급·전망 하향 조정은 다른 신평사대비 한 박자 늦은 모습을 보였다. 주 거래처인 현대자동차의 판매 부진 이유로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선제 변경한 성우하이텍(A) 정도가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하향 일변도 벗어나…정유화학·철강업종↑
조사기간 동안 주목할 만한 사항은 신평사의 신용도 상향 조정 경쟁 강도도 높았다는 것이다. 정유화학이나 철강처럼 대체로 양호한 업황에 속한 기업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NICE신용평가는 4월 롯데케미칼(011170)(AA+)에 대해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등급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끌어올렸다. 뒤이어 한기평도 6월 등급전망 상향에 동참했다.
SK루브리컨츠는 한신평과 한기평이 4월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상향 조정했다. NICE신평도 5월 같은 수준으로 신용등급을 높였다. 생산능력 확대와 재무안전성 개선이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에서다. 조정 시기가 3개월 이상 차이나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NICE신평과 한기평은 각각 5월과 9월 한화케미칼(A+)의 등급전망을 ‘긍정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NICE신평은 동국제강(001230)(BB+)의 등급전망은 ‘긍정적’으로 조정하고 포스코대우(047050) 신용등급을 ‘AA-’로 높이면서 철강을 전방사업으로 둔 업체를 호평했다. 한신평과 한기평은 6월14일과 15일 현대비앤지스틸(004560)(A-) 등급전망을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실적·재무가 개선세인 LG생활건강(051900)도 신용등급이 ‘AA+’로 한 단계 올라갔다. NICE신평이 6월12일 먼저 올렸고 열흘 뒤 한기평이 뒤따랐다. 한신평과 한기평은 각가 6월과 8월 주력사업이 회복 중인 OCI(010060)(A)의 등급전망을 ‘긍정적’으로 상향했다. 저조한 실적으로 외면 받던 기업 중 다시 온기가 돌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한기평은 4월 현대로템(064350)(A)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 올렸고 5월 한신평·NICE신평이 후행했다. 부진했던 신규수주가 회복하면서 수익·재무안정성이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NICE신평을 비롯한 신평사 3사는 현대산업(012630)개발에 대한 신용등급을 ‘A+’로 1노치 상향 조정했다. 분양 안정성을 바탕으로 회사채 시장에서 소외되던 건설사 중 두각을 드러낸 것이다.
◇등급 조정 안정 국면…“속도보다 적시성 중요”
신평사들의 신용등급·전망 상향이 이어지면서 하향 일변도 조정 추세 역시 변화하고 있다. 26회 SRE 조사기간 동안 신평사 3사의 신용등급·전망·감시 조정은 총 112회 이뤄졌는데 이중 상향은 49건으로 43.8%의 비중을 차지했다. 25회 조사기간 중 상향의 비중이 35.0%였던 것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수준이다.
26회 SRE 조사에서도 등급 조정 속도에 대해 ‘현재 수준의 등급 조정 속도가 적당하다’는 대답이 85%에 달했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되던 급격한 하향 조정 추세가 마무리 단계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는 등급 상향 추세로 전환할 때’라는 응답률도 5.1%로 전회(2.6%)보다 두 배 가량 상승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경기 개선과 함께 정보기술(IT) 등 업황이 상승 사이클을 타면서 일부 업종에 대한 상향 요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단순 선제 조정이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설문 결과도 나왔다. 26회 SRE에서 신용등급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한기평(3.81점)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 반면 NICE신평(3.42점)은 최하위에 머물렀다. 선제 조정이 많았던 곳이 오히려 박한 평가를 받았다. SRE 자문위원은 “신용등급 선제 조정을 하더라도 해당 등급이 적정한지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