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진섭기자] 1999년 미국이 쏘아올린 화성 기후 탐사선이 화성 궤도에 낮은 고도로 진입하다가 타버린 사고가 났다.
원인을 따져보니, 설계 제작사는 미국 전통 도량법인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한 반면 탐사선을 실제로 운용한 미국 항공우주국은 계기에 표시된 숫자를 미터법으로 착각한 것이다.
정부가 통일된 단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주 언급하는 사례다.
정부는 지난 2007년 7월 1일부터 집, 땅을 거래하는 부동산 매매계약서는 `평(坪)` 대신 `㎡`, 금 가격은 `돈` 대신 `g` 단위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평(坪)등 비 법정 계량 단위를 없애려고 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지식경제부는 "평이나 돈은 수치를 정확히 잴 수 있는 도구가 없어 소비자들이 상거래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며 법정 계량 사용의 필요성을 밝혀왔다.
정부는 도량형을 정착시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방송광고를 해왔다. 또 지자체는 매년 단속을 벌여 적발될 경우 50만원의 과태료도 부과하고 있다.
평을 쓰는 경우가 다반사인 주택·부동산업계는 물론 수요자 모두 상당한 혼란을 겪으면서도 정부의 방침에 따라 3년 가까이 `㎡` 정착에 애써왔다.
하지만 오늘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 발표 내용을 보면 ㎡ 사용에 충실히 따라온 사람들의 노력을 무색케한다는 지적이다.
"오송 같은 지역의 땅값이 78만원인데 이것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이 평당 38만원이다. 그래서 평당 40만원 정도를 받아야 되겠다고 해서 원형지 개발을 희망하는 기업에 평당 40만원에 주겠다고 한 것"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정책의 성공은 국민들이 얼마만큼 이를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가 만든 규정을 정부 스스로가 지키지 않으면 국민들 역시 이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막대한 예산과 지자체의 행정력을 동원해 단속까지 벌이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식경제부나 지자체는 미터법 사용 단속을 수시로 하는 마당에 국민적 관심이 모인 세종시 수정론 발표에서 국무총리실장이 버젓이 `세종시 땅값은 평당 38만원`이란 표현을 쓰고 있으니..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3.3㎡ 단위의 표기법도 과거의 평을 그대로 연상시킨다며 편법이라고 단속까지 하려했던 게 정부"라며 "정부 안에서도 이렇듯 손발이 안 맞는데 일반 서민들이 미터법 사용하기를 바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