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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안과 밖'…이토록 다르고 그토록 닮은

오현주 기자I 2017.04.28 10:36:26

나점수·임동승 2인전 ''풍경의 두 면''
조각가·화가가 달리 해석한 세상풍경
지향·작업 다르나 담백한 이미지 닮아
북촌마을 누크갤러리서 30일까지

조각가 나점수(왼쪽)와 서양화가 임동승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누크갤러리서 여는 2인전 ‘풍경의 두 면’에 내건 자신들의 작품 옆에 섰다(사진=오현주 선임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두 남자가 한 공간에서 전시를 열었다. 한 남자는 조각을 하고 다른 한 남자는 그림을 그린다. 한 남자는 나무에 사람을 심고 다른 한 남자는 캔버스에서 사람을 지운다. 한 남자는 선명해도 너무 선명한 추상조각을 하고 한 남자는 흐려도 너무 흐린 구상회화를 한다. 한 남자는 생각이 너무 많고 다른 한 남자는 생각을 애써 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 들여다보기의 안과 밖이 이토록 다른 두 남자. 그런데 닮았다. 순하고 선한 이미지가 닮았다. 모난 구석 하나 없이 어디다 내놔도 그 공간에 스며들 듯하다. 유난스럽지 않고 담백하다. 나무라는 소재도 닮았다. 깊숙이 개입해 직접 다듬어내든 멀찌감치 바라만 보든 그들이 품은 나무의 성질은 다르지 않다. 단 한 번도 주위를 흐트러뜨린 적이 없는 그것.

서울 종로구 삼청동 언덕배기 북촌마을에 자리한 누크갤러리서 두 남자가 2인전을 열고 있다. 조각가 나점수가 한 남자고, 서양화가 임동승이 다른 한 남자다. ‘풍경의 두 면’이란 타이틀 아래 두 작가는 각자의 작품세계를 조용히 풍경으로 내보인다. 굳이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두 풍경은 그저 서로에게 배어들기만 한다. ‘묘한 어울림’이란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나점수의 ‘시적으로 움직이는 조각’

나 작가는 나무조각을 한다. 나무를 결 따라 수직으로 파내며 공간을 만든다. 나무로 나뭇잎 형상을 만들기도 하고 삼발이 위에 나무사람을 세우기도 한다. 드로잉과 함께 벽에 걸기도 한다. 최근에는 소품 같은 작은 조각에 모터를 달기도 했다. 덕분에 ‘움직임’을 얻은 조각은 시간의 흐름에만 자신을 맡기며 빛을 냈다가 없애기도, 글씨를 투영했다가 지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대단히 정적이다.

나점수 ‘식물적 사유’(2017)(사진=누크갤러리).


나 작가의 주제어는 ‘식물적 사유’다. 굳이 풀어내면 식물처럼 생각한다는 뜻일 텐데. 그는 이를 ‘시적 조형물’이라고 했다. 나 작가는 “식물은 ‘안식’이란 의미”라며 “만들다 보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그러곤 “보이는 대로 보되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며 “슬프게 보이면 슬프게 기쁘게 보이면 기쁘게 보면 된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선 블랙과 화이트로 구성한 동명연작 ‘식물적 사유’를 세우고 걸었다. 조각·드로잉 등 15점이다.

나점수 ‘식물의 사유’(2017)(사진=오현주 선임기자)


▲임동승 ‘의도한 흐린 그림’

임 작가는 흐린 그림을 그린다. 그의 풍경은 마치 속을 알 수 없는 안개에 갇힌 듯하고, 언젠가 한 번쯤 본 듯한 몽롱한 기억을 더듬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문에 구상인지 추상인지 헷갈리는 지점도 있다. ‘양수리에서’나 ‘아차산’ ‘소악루에서’처럼 실제 지명을 쓴 제목으로 구체적인 풍경을 드러내지만 배경은 전적으로 작가의 주관에서 나온 것이다. 임 작가는 “명확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며 “특정한 부분이 퇴색될수록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도 관객에게도 “닫히지 않은 그림”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임동승 ‘양수리에서’(2014)(사진=누크갤러리)


‘흐린 그림’은 누군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초상연구’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물 자체가 또렷이 드러나는 것도 원하지 않지만 모델도 그다지 튀지 않는다. 인물을 풍경으로 삼은 작품 중에는 트럼프 유세장의 한 시민도 있고 역도선수도 있고 필리핀 마약왕의 아들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임 작가는 유화·수채화 등 14점을 내보인다.

임동승 ‘초상 연구’(2016)(사진=누크갤러리)


▲평면·입체가 내는 ‘한목소리’

평행선만 그으며 한 번도 만나지지 않을 것 같은 두 작가를 연결한 건 조정란 누크갤러리 대표다. 조 대표는 “지극히 사색적인 두 작가의 조각과 그림이 풍경의 두 면을 보여준다”며 “고요하게 서 있는 생명의 신비함이, 기억의 한 지점으로 이끄는 풍경의 울림이 표현의 언어는 다르지만 결국 한 지점을 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인전은 누크갤러리가 4년여 전 개관한 이후 줄곧 유지한 ‘영업방침’이다. 성격이 다르면서도 공감대를 가지는 평면작품과 입체작품을 한 공간에 배치하는 일이다. 서로 다른 이미지가 상생하고 시너지를 내는 ‘실험’을 의도했다.

전시 마감이 코앞이다. 이달 30일까지. 4월 마지막 주말 서울 종로구 북촌 나들이길에 한 번씩 들러봐도 좋을 일이다. 일찌감치 ‘두 남자’를 소개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기자의 게으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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