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볕에 양산을 들고 용산어린이정원을 찾은 최모(71)씨는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자 탁 트인 옛 미군기지를 마주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인근에 살면서 미군기지를 자주 지나치긴 했지만 직접 들어와 건물들을 눈으로 보는 건 최씨도 처음이다. 그는 “아들이 가보라고 해서, 남편이랑 산책도 하고 옛날 모습도 볼 겸 왔다”며 “생각보다 넓어서 볼 게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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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침 일찍 어린이정원을 찾았다는 강모(77)씨는 “한 바퀴 돌면서 ‘옛날엔 이랬었구나’ 생각했다”며 “3시간 정도 둘러봤는데 기념식수도 보고, 저 멀리 대통령실도 보고, 힘들면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하고 그러니까 힘들진 않다”고 했다. 할머니와 관람을 마치고 정원을 나가던 초등학생 A(7)군은 “너무 넓어서 다 보진 못하고 조금만 봤다”며 “잔디에서 스프링클러 물도 나오던데 나중에 친구들이랑 와서 놀고 싶다”고 팔짝 뛰어보였다.
지난 4일 개방한 용산어린이정원은 120년간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곳으로,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후 일본군이 주둔하다가 해방 이후부턴 미군기지로 활용된 곳이다. 한국 땅이지만, 사실상 우리 국민이 사용할 수 없었던 ‘역사의 슬픔’이 묻은 부지다. 2000년대 들어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부지를 반환받기 시작한 정부는 우선 대통령실 인근 부지만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조성해 개방했다. 앞으로 반환이 완료되면 약 90만 평 규모의 ‘용산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우리 국민이라도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선 최소 5일 전 사전 예약이 필수인 탓에 출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강원도 횡성에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왔다는 하모(65)씨는 현장접수도 안된다는 말에 분통을 터뜨렸다. 배낭 세 개를 메고 온 하씨는 “나중에 손주들이랑 오려고 미리 답사 차원으로 멀리서 와봤는데 미리 예약해야 하는지 몰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50대 여성 B씨는 “주민센터에서 등본이나 서류를 떼와도 안된다고 하더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용산어린이정원 관계자는 “첫 방문할 땐 사전예약을 꼭 해야 하지만, 이미 방문한 적이 있으면 현장접수가 가능해 바로 입장할 수 있다”며 “사전예약할 때 관람시간을 선택하는데 꼭 그 시간에만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시간제한 없이 충분히 둘러본 뒤 영업시간 종료 전까지만 퇴장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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