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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정보는 이미 AI가 더 많이, 더 빠르게 알고 있습니다. 분석의 속도도, 대안의 양도 인간을 앞섭니다. 이 환경에서 리더의 경쟁력이 여전히 지식에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착각에 가깝습니다. AI 시대에 남는 리더의 우위는 오직 판단과 태도, 그리고 기준을 세우는 힘입니다.
AI는 일을 대신해줍니다. 보고서도 써주고, 문장도 정리해줍니다. 하지만 책임은 대신 지지 않습니다. 기준을 세워주지도 않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어디까지 허용할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그래서 AI 시대의 조직은 역설적으로 리더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무엇을 할지를 정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정해야 하고, 어떻게 말할지를 고민하기보다 언제 침묵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리더의 말과 행동은 곧 조직의 기준이 됩니다. 이 기준이 흐릿해지면 조직은 각자의 감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회의는 많아지지만 결론은 사라지고, 공유는 빨라지지만 책임은 희미해집니다.
문제는 많은 리더가 이 기준을 ‘설명해야 할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기준은 설명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준은 행동으로만 남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반복되는 행동으로만 축적됩니다. 회의 중 스마트폰을 내려놓는지, 보고를 중간에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듣는지, 불편한 결정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지 같은 사소해 보이는 장면들이 쌓여 조직의 기준이 됩니다. 리더십은 순간이 아니라 누적입니다. 말보다 훨씬 느리게, 그러나 훨씬 확실하게 조직에 남습니다.
요즘 조직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말은 많은데 정리는 안되고, 결정은 공유되지만 책임은 없어집니다. 이는 팀원의 태도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이전에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기준이 분명했다면 그렇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의 리더는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행동의 기준을 관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어디에서 올까요? 많은 리더가 여기서 멈춥니다.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리더가 자기만의 기준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직에서 실제로 성장을 만든 리더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서 배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리더들에게 한 단계 더 높은 조언을 합니다. 리더도 혼자 성장하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성원이 리더를 보며 배우듯, 리더 역시 더 큰 리더, 이른바 ‘빅 리더’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도 처음부터 원본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미 검증된 프롬프트를 가져와 고치고, 상황에 맞게 편집합니다. 리더십도 정확히 같습니다. 회의를 여는 첫 문장, 질문을 던지는 순서, 침묵을 사용하는 타이밍, 결정을 정리하는 마지막 문장 하나까지 이미 잘하는 리더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써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방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리더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원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리더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의도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제가 만나본 큰 리더일수록, 그 안에는 수많은 복사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사본을 자기 방식으로 편집하며 기준을 계속 갱신해왔습니다. ‘각곡유아(刻鵠類鵝)’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니를 새기려다 실패해도 거위와 비슷해진다는 뜻입니다. 리더십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리더를 목표로 하기보다, 먼저 제대로 된 리더를 닮아보는 것, 그리고 그 기준을 자신의 조직에 맞게 다듬어 전수하는 것입니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개인의 완성이 아닙니다. 기준이 이어지고, 편집되고, 확장되는 과정입니다. 리더십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좋은 리더는 조직을 키우고, 큰 리더는 다음 리더의 기준까지 남깁니다. 그리고 AI 시대에 진짜 필요한 리더는, 바로 그 기준을 남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문성후 대표 △경영학박사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 △연세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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