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역주행 사고 계기 '급발진' 불안 커져
덩달아 페달 블랙박스 검색량 급증…인증글도
차량 결함이냐 운전 부주의냐 유일한 입증수단
전문가 "브레이크 밟는 영상 운전자에 유리"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운전 경력 4년 차인 김모(35)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알아봤다. 9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를 계기로 ‘급발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20만~30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제동 장치의 불량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생각에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씨는 “1채널 블랙박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가 있어 3채널로 알아보고 있다”며 “블랙박스를 확인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만약을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인근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 사고 수습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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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이데일리 취재에 따르면 최근 급발진 의심 사고가 잇따르면서 브레이크 작동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페달 블랙박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5년간 접수한 급발진 의심 신고 건수는 136건이지만 실제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실정이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상 급발진 입증 책임도 차량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에게 있다. 지난해 급발진 의심 사고의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돌리는 이른바 ‘도현이법’이 발의됐으나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또 차량에는 사고 직전의 주행 정보가 기록되는 차량 사고기록장치(EDR)가 있지만, 기록 시간이 사고 직전 5초에 불과한 데다 EDR 자체의 오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무용론마저 나오고 있다.
결국, 혹시 모를 사고의 자기 방어 수단으로 운전자들이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장비를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페달 블랙박스 후기글과 인증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랩 검색어트렌드에 따르면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 운전자가 사고 원인으로 급발진을 지목한 이후 페달 블랙박스 검색량은 사고 전날인 지난달 30일 수치 2에서 지난 3일 수치 100으로 50배 급증했다. 페달 블랙박스는 급발진 자동차의 운전자가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 중 무엇을 밟았는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어, 급발진을 입증할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 시중에 판매되는 급발진 대비 페달 블랙박스(왼쪽), 네이버 데이터랩 페달 블랙박스 검색량(오른쪽)(사진=온라인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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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페달 블랙박스에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는 모습이 녹화된다면 법적 증거로 인정된다고 내다봤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차량 급가속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건 운전자가 제대로 운행했다는 의미”라며 “그런데도 차량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입증 책임은 제조사로 전환된다”고 밝혔다. 김원용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도로교통사고감정사) 역시 “페달을 제대로 조작하는 모습이 녹화되고 그 영상의 신뢰성이 담보된다면 형사사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며 “교통사고는 운전자가 사고를 예견하고도 회피하지 않은 과실을 처벌하는 것인데, 브레이크를 풀가동했다면 운전자가 회피 의무를 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형량에서도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교통사고처리법은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 업무상과실 또는 중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하는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운전자들 사이에선 급발진 관련 각종 자구책도 공유되고 있다.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차량 시동 두 번에 나눠 걸기 △엔진 회전수(RPM) 1000 이하로 떨어진 후 출발하기 △평소 내부 습기 제거하기 등의 예방법이 전파됐다. 또 급발진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브레이크 길게 밟기 △기어를 중립(N)으로 변경 △시동 끄기 △최대한 안전한 곳에 부딪히며 감속하기 등이 대처법으로 알려졌다. 한 누리꾼은 “주행 중 의도하지 않은 가속 원인에는 급발진뿐 아니라 ‘가속페달 바닥매트 걸림’, ‘물병·신발 등 외부 물체 끼임’도 있을 수 있다”며 본인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페달 쪽을 자주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