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지영한기자] 자동차 노조의 ‘하투(夏鬪)' 열기가 서서히 달아 오르고 있습니다. 과거엔 봄철에 임단협이 많아 ‘춘투(春鬪)'가 유행어였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업계에선 언제부턴가 여름휴가 직전에서 협상이 타결되는 사례가 많아졌고, ‘하투=자동차 파업’이란 인식이 자연스레 자리잡게 됐습니다.마침 완성차업체들이 줄줄이 ‘산별노조’ 전환을 결정, 산업계 안팎의 관심이 자동차 노조에 쏠리고 있습니다. 증권부 지영한 기자가 완성차 '산별노조'에 대한 단상을 정리했습니다.
요즘 산업계에선 완성차업계의 산별노조 전환이 큰 관심거리로 부상했습니다. 민주노총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를 비롯해 기아차와 GM대우 등 굵직굵직한 완성차 노동조합들이 잇따라 산별노조 전환을 결의했습니다.
완성차 노조의 산별전환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정확히 3년전인 2003년 6월에도 현대차 노조는 산별노조 전환을 시도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조합원 투표결과 가결기준에서 불과 0.4%가 모자라, 산별전환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선지 주식시장에선 완성차 메이커들의 산별노조 전환이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완성차 업체들이 이번처럼 무더기로 ‘산별노조’로 전환한데 대해선 다소 ‘의외’라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완성차 노조들은 ‘왜’ 한꺼번에 산별노조 전환에 나섰을까요. 시장에선 내년부터 바뀌는 노사관계 규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새로 바뀌는 규정이 ‘사측’에게 보다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조합원들이 위기의식에서 ‘산별노조’를 선택했다는 분석입니다.
예컨대 내년부터는 복수노조가 허용됩니다. 이에 따라 현재의 노동조합으로선 복수노조로 인해 자신들이 ‘사분오열’ 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할 처지라는 것이죠. 여기에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도 산별노조 전환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줬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그러나 기자는 완성차업계가 한꺼번에 ‘산별노조’로 전환한 주된 배경을 노사 양측의 고질적인 불신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나 회사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산별노조’라는 또 하나의 두터운 ‘벽’을 쌓은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사례를 들겠습니다.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 체제로 전환한 후 글로벌 확장 전략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도공장과 중국공장에 이어 얼마전엔 미국공장까지 가동했습니다. 유럽에선 슬로바키아공장 건설이 한창이고, 체코에도 공장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의 사측 관계자는 얼마전 (신형 아반떼 생산차질과 관련지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노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 생산라인에 인력을 배치하려 해도 노조가 ‘노우(NO)’ 하면 안된다. 사사건건 발목 잡는데, 어떻게 일하겠나. 우리는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다.”
다소 감정이 섞였지만,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렇게 까지 말할까’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에 대한 노조원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많이 다릅니다. 앞으로 해외공장의 사업비중은 높아만 갈 것이고, 현지화 전략도 가속도가 붙게 되면, 결국엔 국내공장의 일자리를 빼앗길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을 적지 않게 느끼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가난할 때 고생한 ‘조강지처’를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딴 집(해외) 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냉소’도 나옵니다.
최근 현대차 노조가 부분파업을 벌이자 시장 관계자로부터 관전평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를 보면, 마치 ‘회사가 줄 여력이 있을 때 빼먹자, 더 늦으면 빼앗을 것도 없다’는 식으로 달려들고 있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거친 표현이지만, 앞서 지적한 현대차 근로자들의 걱정을 고려하면 100% 틀린 말도 아니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확장전략은 ‘생존전략’이며 불가피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중 19년이나 파업을 해 온 노조가 미워서도 아니고, 해외사업에 ‘올인’하기 위해 국내공장의 과도한 희생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판단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엔고’ 시절에 도요타와 혼다가 북미공장을 짓고 나가, 오늘날 글로벌 톱 메이커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국내 메이커들도 원화절상과 무역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해외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글로벌 메이커와 경쟁하기 위해선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볼륨’이 필요합니다. 현대차가 생존을 위해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국내공장과 한국시장(국내소비자들의 높은 충성도)이 든든하게 뒷받침됐기에 해외진출도 가능했습니다. 도요타 마찬가지였구요. 국내공장 근로자들의 ‘피와 땀’과 내수시장이 없었다면 감히 해외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생존’이라는 대의를 전제한다면, 글로벌 확장전략을 둘러싸고 현대차 노사의 시각이 크게 엇갈릴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 보기엔 글로벌 확장전략은 물론이고, 매사에 현대차 노사는 사사건건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비쳐집니다. 저는 앞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원인을 노사간 ‘불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얼마전 경상북도 경주시 인근에 위치한 한 자동차부품회사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회사는 노사관계가 좋은 것으로 주변에 소문이 많이 나 있더군요. 마침 자동차업계의 ‘하투(夏鬪)’가 이슈로 부상해, 회사 사장님께 ‘노사화합의 비결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뜸 ‘부인한테는 잘 하고 계시나요?”라고 묻더군요. 그 분의 경우엔 최근 출장길에 화장품을 하나 사서 부인에게 선물했다고 하더군요. 화장품을 고를 때 등에 땀이 날 정도로 이것 저것 따져보고, 신경을 쓴 탓인지 부인이 매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분의 요지는 “종업원들을 ‘배우자’처럼 사랑하고 믿음을 주면 노사문제는 저절로 풀린다”는 겁니다. 억지 웃음도 한두 달이지, 가식은 드러나게 돼 있으니, 종업원을 진정으로 좋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상대자인 근로자의 노력도 필요하겠죠. ‘사랑’과 ‘믿음’을 왜곡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고, 상대편에게도 그에 상응한 ‘애정’과 ‘신의’를 안겨줘야 하겠지요.
뜬금없는 주장인 줄 모르나, 기자는 산업계의 뿌리깊은 노사의 불신이 ‘사랑’으로 풀릴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