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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부지 발표 이후 첫 주말을 맞은 16일 오후 8시 경북 성주 군청 앞. ‘다 함께! 힘찬 새 성주’란 발광 다이오드(LED) 현판 앞에서 붉은 머리띠를 맨 이재동(49) 성주군 농민회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이 회장은 주민들을 향해 “사드 배치를 저지할 때까지 계속 투쟁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맛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군청 앞에 모인 주민 1000여명(경찰 추산 800여명)은 손에 든 촛불을 들어 올리며 함성으로 화답했다. 이날 ‘성주사드배치 결사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주민들은 2시간 동안 정부의 일방적인 밀실 결정을 성토했다.
◇“믿고 찍었더니 선물이 사드냐”..여권 향한 불만 고조
인구 4만 6500여명(2014년 말 기준)·면적 616.14 ㎢ 규모의 자그마한 성주군이 성난 민심으로 들썩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치러진 다섯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계열 후보가 내리 당선될 정도로 ‘여당의 텃밭’이지만, 정부가 지난 13일 일방적으로 성주를 사드 배치 부지로 발표한 뒤 여당인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군청 인근에서 만난 박모(61·여)씨는 대뜸 호통부터 쳤다. 박씨는 “지역 주민들이 믿고 새누리당을 찍었더니 돌아온 선물이 사드였다”며 “앞으로는 똑똑히 알고 투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은하(41)씨는 ‘내 아이 생명 위협하는 사드 결사 반대한다’고 쓴 피켓을 들고 닷새 동안 군청 입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성주 토박이인 배씨는 “결혼 초에는 아이들 공부에 도움될까 싶어 대구로 이사를 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며 “하지만 물 좋고 공기 좋은 성주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주저앉았는데 사드 탓에 물거품이 될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배씨는 성주군에서 남편과 함께 딸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난 민심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란 반응도 있었다. 예고 없던 결정에 분노했을 뿐 정부 결정에 수긍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반대 열기도 점차 가라앉을 것이란 얘기였다. 정규성(80)씨는 “한마디 상의 없이 갑작스럽게 발표해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이성을 되찾아 갈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성주 군민으로 사드 배치를 당연히 반대한다”면서도 “정부가 사전에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설명했다면 이런 사달이 나지 않고 성주 군민이 적정선에서 양보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사드배치반대’ 대규모 상경 집회 예고
정부 발표 이후 반대 집회를 이끌어 온 ‘사드성주배치 반대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사드성주배치 저지 투쟁위원회’(투쟁위)’로 조직을 확대·개편했다. 전열을 재정비해 사드 배치 저지를 위한 장기전에 돌입하겠다는 포석이다.
투쟁위는 오는 19~20일 이틀간 국회에서 열릴 예정인 대정부 긴급 현안 질문에 군민 대표단을 보낼 예정이며 오는 21일에는 대규모 상경 항의 집회도 준비하고 있다. 투쟁위는 또 지역구 의원인 이완영 의원과 김항곤 군수에게 새누리당 탈당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주민을 상대로 한 설명회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와 관련, 경찰이 증거 분석에 착수하는 등 본격 수사에 나서자 주민들은 “경찰과 경호팀의 폭행도 수사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성주 주민들은 지난 15일 군청을 찾은 황 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 일행에게 달걀이나 물병을 던지는 소동을 일으켰다. 또 이동 차량을 둘러싸면서 황 총리는 6시간 여 동안 갇혀 있기도 했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사태 발생 하루 뒤인 16일 수사전담반을 꾸리고 불법행위를 저지른 주민을 엄정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폭력행위에 가담한 주민을 소환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처벌할 예정이다. 또 트랙터로 총리가 탄 미니버스 출입문을 막은 주민은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채증 자료를 분석하며 불법행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