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지영한기자]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위기가 세계경제 침체에 대한 경계감으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주식시장도 이러한 우려에 반응해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위기가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차(005380)에겐 오히려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쟁기업들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고, 현대차를 괴롭혀온 환율여건도 오히려 크게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기관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주식을 열심히 사들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식비중을 줄이려는 외국인들이 매물을 쉬지 않고 쏟아내고 있지만, 주요 펀드를 중심으로 한 국내기관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사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 삼성전자, 후발사 한계상황..좀 더 밀어부치면 큰 수혜 기대
삼성전자는 반도체 뿐만 아니라 LCD, 휴대폰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잘 짜여져 있다. 반도체 메모리가격이 폭락했지만, LCD와 휴대폰 분야의 실적호조로 전체적인 수익성은 양호했다. 반도체도 다른 업체에 비해 코스트가 낮은 편은 아니지만 비싸게 파는 프리미엄 제품비중이 높아 후발사보다 형편이 좋다.
그러나 대만의 난야나 독일의 키몬다와 같은 해외 D램업체들은 사정이 다르다. D램가격 폭락으로 영업손실이 엄청나게 확대됐다. 외부에서 빌려온 차입금은 증가하고 있고 보유현금을 줄어들어 투자여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난야의 경우엔 작년 4분기 영업이익률은 D램가격 급락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마이너스 55%에 달했다. 키몬다의 영업이익률은 무려 마이너스 115%에 달했다. 영업흑자를 기록한 삼성전자와는 단순 비교가 어려울 정도다.
이중 키몬다의 경우엔 2008년 설비투자를 위한 자본지출 감소(Capex Cut)가 당초 2007년 대비 15% 정도로 관측됐지만, 엄청난 손실여파 등을 반영해 25~30% 정도로 확대할 것으로 전해진다.
또 키몬다는 2008년 비트그로스(Bit Growth·출하량을 비트로 환산해 계산한 성장률)를 50% 정도라고 밝혀왔지만, 최근엔 이를 30~40%로 낮췄다. 키몬다의 이러한 행보는 D램 업황 부진으로 해외 반도체업체들이 얼마나 큰 어려움에 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따라 지금처럼 공급과잉에 따른 D램가격 부진이 지속되고, 미국발 신용경색 우려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면 D램 후발 업체들은 큰 압박을 받게 된다. 쉽게 말해 영업손실을 줄이기 위해 감산을 선택하거나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투자활동을 크게 늦출 수 밖에 없다.
이승우 신영증권 반도체담당 애널리스트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해외 D램업체들은 현재 상당한 압박감을 받고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선 삼성전자와 해외업체간 격차가 더 확대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대만 등 해외업체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D램 생산을 꾸준히 늘려, 급격한 반도체가격 상승을 막음으로써 후발사들이 버티지 못해 시장에서 밀려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현 상황이 지속되면 삼성전자의 마케쉐어가 확대될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투자를 못한 업체들간 기술격차도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된 후 반도체경기가 호전되면 그 수혜는 고스란히 삼성전자에 돌아갈 것이란 설명이다.
◇ 현대차, 환율에 울었지만 이젠 환율 때문에 웃는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뚜렷해 지면서 서울증시에선 외국인의 매도행진이 연일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금융시장이 들썩이는 와중에 원화환율은 달러당 950원 안팎까지 급등했다.
이에 따라 수출비중이 높고, 특히 달러결재가 많은 자동차업체들은 매우 고무가 돼 있다. 현대차의 경우엔 올해 환율을 900원을 예상하고 사업계획을 짰는데, 환율은 이미 950원까지 올랐다. 당초에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환율여건이 급속히 개선된 것이다.
CJ투자증권이 추정한 2007년 현대차의 수출 규모는 188억 달러로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7.5%에 달한다. 이중 통화별 비중은 달러 58%, 유로 34%, 기타 통화 8% 등이다. 또 영업상 달러 순 익스포저(Net Exposure)가 50억 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달러/원 환율이 10원 상승할 경우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500억원 이상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올해 사업계획서상 900원의 환율을 예상했던 현대차로선 최근 환율급등으로 앉은 자리에서 상당한 수익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엔화도 강세로 돌아서면서 현대차는 일본차에 대한 경쟁력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현대차는 불과 얼마전만해도 원화강세에다 엔화약세까지 겹쳐 주요 수출시장에서 일본차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미국시장에선 현대차의 소형차가 일본차에 비해 가격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현대차의 베르나(현지 모델명 엑센트)와 도요타의 야리스(옛 에코) 등 소형차를 비교할 경우 일본차의 가격이 한국차보다 대등하거나 되레 더 싸지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따라서 최근 원화환율이 급등하고 엔화마저 강세로 돌아선 점은 현대차에게는 대형 호재임이 틀림없다. 미국발 악재로 외국인들이 근래 현대차 주식을 지속적으로 팔고 있는 반면 국내기관들이 매물을 적극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환율여건 변화와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
최대식 애널리스트는 "현대차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도 전년동기비 53.7% 증가하고 영업이익률도 1.5% 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올 1분기 영업이익도 보수적인 환율 전망치에도 불구하고 전년동기비 40.5% 증가하고 마진은 0.9% 포인트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성문 한국증권 연구위원은 "미국 자동차시장의 고유가 및 서브프라임발 경기침체 우려는 오히려 연비가 우수하고 '밸류카(value car)'의 이미지가 강한 한국산 자동차에게는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관련기사 ◀
☞(프리즘)특검에 소환된 `익명의` 삼성 임원
☞참여연대·민변, 삼성 '증거인멸' 의혹 고발
☞삼성 `시크릿컬러폰`, 화장품 베네피트와 손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