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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FX칼럼)泰山과 長江이 아쉬워

이진우 기자I 2002.12.09 16:32:38
[이진우 농협선물 리서치팀장] 12월 들어 시오카와 마사주로 일본 재무상의 “150엔 이상이 적절” 발언에 한 바탕 요동을 친 달러/엔 시장 및 달러/원 시장은 ‘입으로만 끌어올린 환율의 허무함’을 다시 한 번 생생하게 체험하였습니다. 오늘은 두 가지를 이야기 하고싶어 펜을 듭니다. 달러/원 시장이 여느 때와 달리 서울의 금융시장 중 가장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는(?)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하나요, 또 다른 시각에서 살펴볼 때 느끼게 되는 듬직한 플레이어들의 부재(不在)현상이 그 둘입니다.

◆ 볼 레벨은 봐야 직성이 풀리는 시장
11월 하순 환율이 1218.50원의 단기고점 형성 이후 내림세를 보이던 무렵, 1204원 공방 이후 좀 더 내려갈 듯 하던 환율은 1202.50원을 바닥으로 다시 상승세로 반전하여 지난 금요일 1231.90원의 일중 고점을 찍기까지 집요한 환율 상승세가 이어졌었다. 연일 이어진 외국인들의 주식 순매수 행진에 따른 매물부담이나 월말 네고장세에서의 물량부담, 그리고 시장의 관심을 끌던 현대상선의 자동차 운반사업 매각대금도 조금씩 나뉘어져 시장에 출회된 것으로 알려진 시기에 오로지 달러/엔 환율의 상승세(엔화약세)라는 재료 하나에 의지하여 1230원대를 기어이 한 번 찍어 보았고, 그러한 엔화의 급락세는 느닷없이 150~160엔을 거론한 시오카와 마사주로 일본 재무상의 “적정환율에 대한 언급”에 기인했다.(12월 2일자 칼럼 참조)

지난 목요일(12월5일), 시장에 노출된 달러공급요인에 기댄 은행권의 숏플레이가 과도하여 시장 포지션이 상당히 모자라는 상태임을 간파한 역외세력과 일부 역내 플레이어들의 과감한 숏스퀴즈 유발전략이 적중하여 1224원이라는 Critical level이 돌파되었던 달러/원 시장은 바로 다음 날 실제 수급상황이 뒷받침 되어주지 않는 가운데에 롱으로 흥분한 투기세력들의 막판 손절매도로 인해 고점 경신 후 곧바로 11.90원에 달하는 낙폭을 기록, 허무하게 1220원으로 마감하였다. 그리고 주말 뉴욕환시에서 달러/엔 환율이 하루만에 125엔대에서 123엔 중반까지 급락한 여파로 인해 월요일(12월9일) 환율은 다시 1210원의 하향돌파를 두고 고민하는 장세로 급변하였으며, 이러한 달러/엔 환율의 급락세 배경은 실업률의 상승 등으로 대변되는 미국 고용시장의 불안과 폴 오닐 재무장관 및 로런스 린지 백악관 경제수석의 사임(경질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이라는 뉴스로 설명되어진다.

11월 하순 1200원이 지켜질 것인가로 시장이 한참 고민할 때 나왔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리포트가 시오카와 발언 이후 달러/엔 환율이 125엔대에서 126엔을 위협하던 무렵에 막 쏟아져 나온 것은 이번에도 여전한 현상이었고, 그러한 리포트나 전망들은 이번에도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작 환율전망이 긴요하던 시기에는 가만 있다가 달러/엔이 125엔대로 올라서고 일본 재무상은 150엔도 갈 수 있다고 공갈 아닌 공갈을 치고 있을 때 “연말 환율 1260원대 가능” 식으로 발표된 환율전망은 아무리 좋게 봐 줘도 낯 간지럽다. 설령 나중에 연말 환율이 1260원을 간다손 치더라도 1230원 근처에서 달러매수를 서두르게 함으로써 20원이나 그 이상의 기회손실을 끼친 점은 그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타이밍으로 보나 논리전개의 배경으로 보나 아쉬움이 많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필자는 최근 일주일 간의 장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자 한다. 10월 16일 1267.50원이라는 고점에서부터 11월11일 1197.80원이라는 저점까지의 환율 급락세에 대한 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1200원 재붕괴에 나섰던 시장은 1203~1204원의 단단함을 확인한 뒤 고점을 좀 더 높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봐야 할 레벨을 제대로 못 본 데에 따른 찝찝함이 1203원 근처에서 단단한 환율 하방경직성을 형성했던 것이다.

수급상 공급우위가 확연한 상황에서도 시오카와의 발언을 빌미로 한 엔화약세라는 재료로 38.2%의 되돌림 수준(1224.40원)을 돌파한 환율은 그 모멘텀을 이어가 50% 되돌림 수준인 1232.60원 근처를 타겟으로 삼아 상승시도를 좀 더 펼쳐보았지만, 1233원 가까이를 노리는 은행권 롱플레이어들의 심리를 읽은 업체 네고물량과 기타 대기매물들이 시장 포지션을 무겁게 만든 상황에서 금요일 오후 달러/엔 상승세가 주춤해지는 것을 계기로 롱포지션 처분이 줄을 잇자 이틀에 걸쳐 열심히 끌어올렸던 환율 상승폭을 두어 시간 만에 다 토해내는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그리고 볼 만한 레벨을 거의 다 보고 나니 이젠 다시 환율이 내려가도 좋다는 뉴스가 때맞춰 나왔고, 그 절묘한 타이밍을 위해 오닐 재무장관이나 로런스 린지 경제수석은 꿀꿀한 주말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

◆ 듬직한 플레이어들이 그리운 시장
부쩍 변동성이 급감한 국내 증시나 채권시장에 비해 최근 외환시장의 환율 변동성은 시장다운 시장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저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빠질 것 같은 날에 급등하기도 하고 오를 줄 알았던 날에 급락장세를 맞기도 하는 등 이른바 무림의 고수들도 내일, 아니 반나절 후를 기약할 수 없는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거래를 하는 자들이나 시황을 쓰는 자들로서는 신나는(?) 장세이긴 하지만, 몇 명의 버는 사람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뼈아픈 손절을 단행할 수 밖에 없는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리고 은행권이 업체들보다도 못한 장세전망을 지니고 `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지금 서울 외환시장의 영세성과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 싸움에 대해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선 굵은 딜을 하는 은행이나 딜러들이 아쉬운 시절이다. 상대가 연합군을 형성해서 한꺼번에 덤빈다 하더라도 일합을 겨룰만한 역량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 이른바 국책은행의 인기 없는 거래행태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만한 레인지 장에서는 독불장군 행세를 하는 은행들이 몇몇 있지만, 그들도 정말 환율의 방향성에 대해 깃대 들고 앞서 나가야 할 시점에는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큰 포지션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메이저들이나 돈을 벌 때나 잃을 때나 씹히기 마련인 국책은행이 좀 더 큰 산(泰山)과 큰 강(長江)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버릴 수가 없다. 몇 시간의 폭우로 사태가 나고 홍수가 나는 민둥산이나 실개천이 아니라 울창한 숲을 두른 태산, 도도히 흐르는 장강의 모습이 보고 싶다.

달러/엔 환율의 약간의 출렁거림에 연말 환율에 대한 전망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면 곤란하다. 신나게 움직이는 시장의 흐름을 즐기되,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오늘도 시장은 1214원이라는 한 번쯤은 보았어야 할 레벨을 본 다음에 다시 개장 무렵의 레벨로 회귀하고 있다. 122.40이라는 크리티컬 레벨과 1210원이라는 레벨에 대한 경계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폴 오닐 재무장관의 후임으로 존 스노우라고 하는 월街가 별로 환영할 것 같지 않은 인물이 선임된 사실에 대한 뉴욕 증시와 외환시장의 반응을 좀 더 지켜본 뒤 확실한 향후 환율전망을 새로 올려볼까 한다. 금주도 환율은 정신없이 움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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