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표현은 지나칠 수 있어도 온도차는 확실히 존재했다. 합병을 추진 중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얘기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지난달 26일 합병안을 전격 발표했다. 이후 합병 여부를 놓고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분쟁을 겪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은 최전선에 나서 합병 반대 공세를 차단하고 역습을 가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합병의 또 다른 당사자인 제일모직은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보였다.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자 제일모직은 30일 기업설명회(IR)를 개최하고 합병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합병 이후 배당성향 30% 추진 등 주주 달래기에 방점을 찍었다.
IR 행사에는 제일모직의 윤주화 사장과 김봉영 사장, 삼성물산의 김신 사장이 참석했다.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을 제외한 양사 경영진이 총출동한 것이다.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설명한 합병 시너지 효과는 기존 내용을 반복하는데 그쳤고, 여전히 모호했다. 다만 합병 의도의 경우 양사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윤주화 사장은 합병법인이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제일모직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배진한 상무는 합병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가 줄어들고 지배구조 투명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합병의 목적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김신 사장은 합병 배경으로 제일모직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아 새로운 사업기회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 현재 역량으로는 이익률을 개선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 합병 이후 바이오 사업 지분율이 높아져 기업가치에 도움이 된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제일모직에 올라타 위기 극복을 위한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합병에 임하는 속내는 달라도 도약의 모멘텀을 찾겠다는 목적은 동일하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둘러싼 잡음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