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이명박 대 반(反)이명박'
6일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첫 대선 후보 TV 토론회는 현재 정치권 구도를 선명하게 반영했다. 이날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5명의 대선 후보들은 이명박 후보를 포위 공격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작심한 듯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각종 의혹들과 도덕성 논란에 대해 융단 폭격했다. 이명박 후보도 이에 질세라 맞서면서 날선 '공방'들이 오갔다.
비슷한 정책과 비전을 갖고 있는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벌이는 보수 경쟁을 지켜보는 것도 토론회의 숨은 재미였다.
◇ 정동영, 이명박 '맹비난'
시작부터 불꽃이 튀었다.
이명박 후보는 "정권 교체할 날이 13일 앞으로 다가왔다. 어제(5일) 검찰 조사 결과에 의해 모든 것이 밝혀졌다"는 말로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검찰 수사 결과 자신의 혐의가 모두 무혐의처리되면서 한껏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
곧바도 바통을 이어받은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를 겨냥 "탈세 위장 각종 거짓말 의혹에 휩싸여 있는 후보와 토론하는 게 창피스럽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는) 미국 같으면 BBK 의혹 말고도 오늘 TV 토론회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며 "검찰이 이명박 후보를 세탁해주려 했는 지 모르지만 부패한 후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날 정 후보는 작심한 듯 이 후보를 공격했다.
이날 후보들간 견해차가 극명하게 드러난 대북정책 분야. 정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에 대해 "외교의 기본은 신뢰와 일관성"이라며 "이명박 후보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데 과연 국민이 믿겠냐"고 비꼬았다.
그는 "작년 핵실험 때는 전쟁 불사론을 외치더니 북한과 미국이 대화하자 (한나라당의) 신대북정책을 지지한다고 했고, 이회창 후보가 출마하자 내 생각이 아니었다. 철회한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정 후보는 또 "백악관 부시 대통령과 면담을 추진하다 나라 망신시켰는데 어떻게 당당하겠냐"며 "또 김정일을 실패한 지도자라고 해 놓고 어떻게 설득하나. 앞뒤가 안맞는다"고 지적했다.
정 후보는 대북정책 분야에서도 "권력기관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냈더니 검찰이 이를 악용해서 이명박 품에 안겼다"며 검찰과 이명박 후보를 '맹비난'했다. 그러자 권영길 후보가 "검찰이 이명박 후보 대변인이 된 것은 맞다"면서도 "북핵 문제 이야기나 하자"고 말을 잘랐다.
◇ 이명박 "전쟁하러 왔나"
이명박 후보도 '발끈'했다.
그는 "정동영 후보는 전쟁하러 나온 것 같다. 평화주의자가 아닌 것 같다"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검찰을 믿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범죄자의 이야기를 믿고 대한민국 검찰은 믿지 않는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검찰청장은 노무현 정동영 정권이 임명했다. 혹시 북조선 검찰이 조사하면 믿겠냐"고 비꼬았다.
이명박 후보는 또 정동영 후보를 직접 겨냥, "노무현이 대통령 돼서 좋은 것은 다 했다. 할 거 다하고 부총리 인기가 떨어지니깐 당을 바꿨다"며 "좋은 데만 찾아다녀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 진보-보수 이념 전쟁
대북정책 분야에서는 전체적으로 이회창-이명박 등 보수진영 대 정동영-이인제-권영길 등 진보진영으로 편이 갈렸다. 이 와중에 이회창과 이명박 후보간 보수 선명성 경쟁도 벌어졌다.
이회창 후보는 "북핵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 국민의 안전과 민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원칙과 합당하고 효율적인 협상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회창 후보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상호주의가 가장 중요하다. 가만히 앉아있는 데 지원하면 어떤 바보가 핵을 폐기하냐. 정신나간 소리"라며 다소 격앙된 반응까지 보였다.
반론권을 받은 이명박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차이가 거의 없다"며 "다만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을 폐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핵이 폐기될 때까지 남북관계는 단절되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짧게 답변했다.
이에 사회자가 반론 시간이 남았다고 하자, "비슷해서 더 말할 게 없다"고 잘랐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본 권영길 후보가 "이명박 후보의 남북 적대시 정책은 60년대식 반공투사 같다"고 꼬집자, 이명박 후보는 "이회창 후보가 그랬다. 당사자에게 말하라"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권 후보는 "동의하신다고 해서..."라며 "다시 60년대로 되돌릴 수 없다. 평화가 밥이고 통일이 밥인 시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문국현 후보도 "이명박 이회창 후보의 상호주의는 현재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일괄처리 방식과 아주 다르다"며 "미국과 북한은 내년 안에도 핵을 폐기할 수 있다. 지도자는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이회창-이명박 보수 선명성 경쟁
이회창 후보도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이 '오락가락'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회창 후보는 "국가 지도자는 철학과 원칙을 가져야 한다. 상황에 따라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면 남북관계를 풀어가지 못한다"며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 "무늬만 보수지 진짜 보수가 아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고 비난했다.
이명박 후보는 "왜 일관되지 않았냐. 인터넷 공부해 보면 알 수 있다"며 "출마하려고 답변을 짰는 지 모르지만 제대로 보면 일관된 정책"이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이회창 후보는 "한글을 읽는 눈이 다른 것 같다. 서로 연구 좀 하자"라며 웃어넘겼다.
대선 후보들은 이날 대북정책 외에도 개헌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입장을 놓고 토론을 벌였으나 치열한 공방은 벌어지지 않았다.
개헌 문제는 모든 후보들이 "원칙에 찬성하지만 국민의 동의가 우선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다만 강조점의 차이가 있었는데, 이명박 후보는 '개헌보다는 경제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동영 후보와 권영길 후보는 '국민의 기본권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인제 후보는 내각제 개헌을 이회창 후보는 연방제 개헌을 주장했다. 문국현 후보는 "유래없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
중국 동북공정 문제는 모든 후보들이 "일본과 중국의 그릇된 역사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원칙론 수준에 머물렀다.
이날 토론회는 오후 8시부터 2시간동안 KBS와 MBC를 통해 생중계됐다. 다음 토론회는 11일 사회 교육 문화 여성 분야, 16일 경제 노동 복지 과학 분야를 대상으로 2차례 더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