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감색조끼를 입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대의원 두 명이 정문으로 나와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전단지에는 조합원의 지지를 애타게 호소하는 구호들만 나열됐을 뿐. 대의원들도 그저 묵묵히 기계적으로 전단지를 나눠주는 느낌이었다.
오전 9시55분.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앞 광장에서는 10시30분으로 예정된 파업집회를 준비하는 손길들이 보였다. 또 각종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대의원들이 파업현장을 이탈해 집으로 퇴근하려는 조합원들을 막기 위해 정문 앞에 한 줄로 앉기 시작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한 직원은 "평소 같으면 10시 파업이면 훨씬 일찍 미리 나와서 다들 준비하는데 이번 파업은 이제야 준비하네"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광장에 단상이 세워지고 깃발이 나부끼면서 대의원 한 사람이 단상에 올라 파업집회 참가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울산공장 정문에서는 퇴근하려던 직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노조 대의원간에 고성이 오갔다.
"왜 못가게 하는거예요. 만날 이 길로 다녔는데 지금 저 멀리로 돌아가란 말입니까?" 퇴근하려던 한 직원이 따져 묻자 대의원들은 거친 발언들을 쏟아내며 일반 직원들을 몰아세웠다. 몸싸움이 벌어지고 자칫하면 '치고받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기자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현대차 노조가 발급한 '보도'라는 명패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노조 대의원들은 기자들의 사진촬영을 거세게 저지했다.
한 기자는 일반 직원과 대의원들간의 실랑이를 취재하다가 취재수첩이 찢기고 카메라를 압수당할 뻔하기도 했다.
오전 10시20분. 광장에는 파업을 독려하는 노래로 가득했다. 노조원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있었지만 한 눈에 보아도 그 수가 많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파업집회에 참여한 한 노조원에게 조심스레 파업참여 이유를 묻자 "나오고 싶어 나왔나. 가만히 있으면 눈치보이니까 나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파업집회가 시작되고 이상욱 현대차 지부장을 비롯한 노동계 인사들의 파업독려와 지지 발언들이 이어졌다. 단상에서는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고 있었지만 집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그에 비해 너무도 작았다.
한 노조원은 "현장 분위기가 지금 어떤 상황인데 저런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를 하는건지 모르겠다"면서 "빨리 집회 끝나고 집에나 가야겠다"고 말했다. 노조의 이번 파업이 현장 노조원들에게 조차 지지를 못얻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구내식당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근로자들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사를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차 울산공장 관계자는 "사무직 직원들이나 대부분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온 것"이라며 "이번 파업에 대해 근로자들의 반응은 싸늘할 정도"라고 전했다.
마침 식당 내 TV에서는 노조가 준비한 과거 파업때의 모습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현재의 썰렁한 파업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열띤 분위기였다. 하지만 TV를 보며 식사를 하는 근로자들의 표정은 무심하기만 했다.
점심 후 이번 파업에 대한 울산 시민들의 생각이 궁금해 공장 밖으로 나섰다. 공장 정문에서 만난 한 주부에게 파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손사래부터 쳤다. "파업 말도 꺼내지 마세요. 무슨 연례행사도 아니고 뻑하면 한 번씩 해대니 이젠 지긋지긋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버스를 기다리던 한 시민은 "이번 파업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파업"이라면서 "아무도 맞장구쳐주지 않는 이런 파업은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공장 앞의 한 식당 주인은 "공장사람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노조 대의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결정해서 파업한다고 말들이 많다"며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 중 이번 파업이 잘 하는 일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봤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차 울산공장은 적막하다. 1공장부터 5공장까지의 모든 생산라인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부 엔진변속기 공장과 소재공장에서만 10%정도의 가동률을 보일 뿐 나머지 공장들은 일손을 놓고있다.
1공장 근처에서 만난 한 근로자는 "오늘 파업해서 퇴근한 직원들은 이번 주가 주간조여서 다음 주는 야간조로 전환된다. 그래서 월요일 오후에 출근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오늘부터 4일간 쉬는 셈"이라며 "꼭 자기들 쉬려고 일부러 파업한 것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조합원과 시민들이 이번 현대차 노조의 파업에 대해 보내는 시선은 여름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만큼 싸늘하기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