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 은밀, 조직적` 글로벌 항공담합.."007작전 방불"

김재은 기자I 2010.05.27 15:55:32

국내외 항공사 담합사건, 국제카르텔중 최대규모
여객부문 담합은 외면.."반쪽짜리 조사" 비판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27일 발표한 국내외 21개 항공사들의 가격담합 사건은 국내 경쟁당국이 처리한 국제카르텔사건중 최대 규모다. (관련기사☞항공료 담합한 국내외 21개 항공사, 1200억 과징금)
 
그만큼 항공사들간 담합이 국제적 차원에서 대규모로 이뤄졌을 뿐 아니라 007 작전을 방불케하듯 교묘하고 은밀하게 조직적으로 진행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 조사결과는 화물부문의 가격담합에 대해서만 문제 삼고 있을 뿐 소비자들의 경제적 이해와 밀접한 여객부문의 요금담합에 대해선 끝내 혐의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조사'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제카르텔 사건중 최대 규모
 
공정거래위원회가 27일 대한항공(003490), 아시아나항공(020560),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 등 21개 국내외 항공사들에 대해 총 12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지금까지 경쟁당국이 처리한 국제카르텔 사건 중 최대 규모라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2002년 흑연전극봉 국제카르텔을 처음으로 적발, 6개업체에 대해 5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이후 2003년 4월 비타민 국제카르텔 34억원, 2008년 12월 복사용지 국제카르텔 38억원, 2009년 5월 마린호스 국제카르텔 5억5000만원 등에 대해서도 혐의를 확인,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그동안 적발한 국제카르텔 규모는 이번 사건과 비교하면 담합업체수나 과징금액 면에서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공정위가 12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긴 했지만, 대한항공과 루프트한자가 자진신고자(리니언시)로 과징금을 감경받게 되면 실제 과징금 규모는 800억원대로 떨어지게 된다. 
 
실제 대한항공은 이날 공정위로부터 부과받은 487억4200만원중 45.8%에 해당하는 221억9900만원을 과징금으로 낸다고 공식 밝혔다. 감면비율이 54.2%로 두번째 리니언시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첫 번째 리니언시로 알려진 루프트한자가 121억원 전액을 감면받게 되면 전체 과징금 규모는 실제 발표금액의 3분의 2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항공사간 담합 007작전 방불
 
공정위에 따르면 항공사들간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담합은 007작전을 방불케하 듯 은밀하고 교묘하게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문제가 된 유류할증료는 유가상승으로 인한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징수하는 요금이다. 항공사들로선 관행상 할인하지 않고 소비자의 반발도 덜한 이 할증료를 담합의 고리로 활용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이들 항공사들은 1990년대 말 항공화물 운임 인상을 목적으로 유류할증료를 일괄 도입하려다 실패하자 각 지역 노선별로 담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대한항공과 루프트한자가 2002년 6월쯤 유류할증료 도입을 먼저 합의하고 이후 이들을 포함한 17개 항공사가 2003년 항공사 대표모임을 통해 ㎏당 120원의 유류할증료를 도입한후 2007년까지 7년간 담합이 이뤄졌다.
 
이들은 직원을 비밀요원(Secret Services)으로 위장해 은밀히 경쟁사와 접촉했다. 경쟁사와의 의사연락 사실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파리'는 에어프랑스, `암스테르담'은 KLM항공 등 함축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경쟁사와의 모임이나 항공사들간 연합체인 `얼라이언스' 모임 등 공개된 모임도 가격담합의 장으로 활용했다.
 
◇화물만 `담합`?
 
이번에 경쟁당국이 국내외 항공사의 화물운송료 담합에 대해 조치를 취한 것은 미국과 캐나다, 호주에 이어 네번째다. 하지만 이미 조치를 취한 미국과 현재 조사가 진행중인 EU는 화물운송료 뿐 아니라 여객부문에 대해서도 담합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2006년 2월 미국, EU와 동시 현장조사를 벌일 때 화물에 대해서만 함께 조사했다"며 "여객부문에 대해서도 자체적으로 조사했지만 담합에 대한 증거를 크게 찾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국제카르텔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화물과 여객의 회사내 조직이 달라 가격결정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며 "여객 부문 증거를 노선별로 떼어서 봐야하지만 증거를 찾지 못해 심증은 있으나 처벌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은 2007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게 각각 3억달러, 50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총 15개사에 대해 16억1370만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호주 역시 6개사에 대해 4100만호주달러를, 캐나다는 5개사에 대해 1465만 캐나다달러를 각각 부과했다.
 
업계가 우려하는 대목은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관련 매출에 `기본운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EU 당국이 과징금을 산정할때 이번 공정위의 판결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징금이 예상보다 더 무거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유류할증료와 보안할증료에 대해 가격담합을 했지만 공정위가 기본운임을 포함해 관련 매출을 산정한 데 대해선 업계에서 불만이 많다"며 "공정위로서도 과징금 부과기준을 크게 잡은 만큼 실제 과징금은 많이 깎아주는 모양새를 취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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