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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급등에 수익 늘어도 투자 안해…“10년 뒤면 無쓸모”
2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석유업체들의 정제된 석유 1배럴당 이익 마진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동안 1~2달러에 불과했지만, 최근 유가 급등에 힘입어 18달러까지 치솟았다. 덕분에 수익도 크게 늘어 올해 2분기에도 기록적인 성적표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미 석유업체들은 증산을 위한 설비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미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 및 이에 따른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최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산을 위해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설비투자를 해야 하고, 업그레이드 기간도 10년 이상 소요돼 재정부담이 크다. 휴스턴의 대규모 정제시설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미국에서 전기자동차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도 장기적인 수익 전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석유업체들은 유전을 새로 개발하거나 시설 투자로 생산량을 늘리는 대신 배당 등으로 수익을 분배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WP는 “정유업체들과 투자자들은 이익이 오래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정유소가 더이상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쉐브론의 마이클 워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WP와의 인터뷰에서 “이 나라에서 정유공장이 다시 건설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산 늘려도 정제시설 부족…팬데믹 기간 폐쇄 영향
최근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5달러를 돌파했다. 다양한 원인들이 거론되는 가운데, 미 석유업계가 현존하는 유전을 최대한 가동해 생산량을 늘려도 시추된 석유를 정제할 정유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팬데믹 기간 동안 수요 급감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던 유전과 일부 정유공장들이 아예 폐쇄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CNBC에 따르면 미 정유사들의 시설 가동률은 이미 90%를 넘어섰다. 또 WP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미국에서는 정유소 5곳이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정제 능력은 약 5% 감소했고,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연료 공급이 줄었다.
폐쇄 예정인 정유공장은 아직 더 남아있다. 미 화학업체 리온델바젤도 지난 4월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휴스턴 정유공장 운영을 2023년 말까지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필라델피아에서 150년 동안 원유를 처리해온 옛 필라델피아 에너지 솔루션(PES)의 정유공장도 문을 닫는다. 재개발업체 힐코 리디벨로프먼트 파트너스(힐코)는 2019년 폭발사고 발생후 파산경매에 나온 이 공장을 2020년에 매입했다. 힐코는 공장을 허물고 전자상거래 및 바이오 업체들을 위한 친환경 하이테크 캠퍼스로 전환하기로 했다.
아울러 일부 시설들은 바이오 연료 등 대체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어 단지 석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이를 중단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바이든 증산 압박도 효과 없어…업계 “충분히 노력” 반발
하지만 일각에선 휘발유 정제마진이 제트엔진이나 경유보다 현저히 적기 때문에 석유업체들이 휘발유 증산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도 이점을 파고들며 미 석유업계 압박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 “엑손(모빌)은 지난해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런데도 석유업체들은 시추에 나서고 않고 있다.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벌기 때문”이라며 강력 비판했다.
14일에는 엑손모빌·셸·BP·셰브런·필립스66·마라톤 페트롤리엄·발레로 등 7개 대형 석유업체들에 서한을 보내 “미국과 그 가족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휘발유 가격 급등으로 극심한 재정적인 고통을 겪고 있고, 높은 수익을 거두는 정유사들이 이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거듭 증산을 촉구했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석유업계는 오히려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탈탄소 에너지 기조 속에서도 증산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엑손모빌은 16일 성명을 내고 “미국의 석유·가스 공급을 위해 다른 어떤 회사보다 많은 투자를 해왔다. 지난 5년 간 500억달러 이상 투자해 미 석유 생산량을 50% 늘렸다”며 “팬데믹 기간에도 투자를 계속했다. 당시 200억달러 이상 손실을 입었지만 300억달러를 차입해 투자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