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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극심한 비트코인과 달리,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에 1대 1로 가치가 고정된 암호화폐다. 테더(USDT), USDC 같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대표적이며, 발행사가 보유한 달러 자산만큼 코인을 발행해 가격을 안정시킨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전통 금융 시스템의 제약을 뛰어넘으면서도, 일반 암호화폐의 가격 불안정성을 해결한 하이브리드 금융 상품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혁명적인 편의성
스테이블코인은 국경 없는 24시간 즉시 송금을 가능케 한다. 은행 영업시간, 주말, 공휴일의 제약이 사라지고, 국제 송금 수수료가 기존 3~5%에서 0.1% 이하로 떨어진다. 해외 노동자의 송금, 국제 무역 결제, 글로벌 전자상거래가 획기적으로 간편해진다. 특히 은행 계좌 개설이 어려운 개발도상국 국민들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즉시 접속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 가능한 화폐로서 스마트 계약을 통한 자동 결제, 조건부 지급 등 혁신적 금융 서비스도 가능하다.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 확보 조치
발행사들은 여러 메커니즘으로 안정성을 주장한다. 첫째, 100% 담보 방식으로 발행된 코인만큼 실제 달러나 국채를 보유한다. 둘째, 정기 회계 감사를 통해 준비금을 공개한다. 셋째, 실시간 상환 보장으로 언제든 ‘1코인=1달러’ 교환을 약속한다. 넷째, 규제 당국의 라이선스를 취득해 신뢰성을 높인다. 그러나 이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2022년 테라-루나 붕괴 사태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취약성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은 은행 예치 방식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원화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무제한 선택이 가져올 파장
만약 한국인들이 원화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경제 불안 시 대규모 ‘디지털 달러라이제이션’이 발생할 것이다. 원화 약세 전망 시 국민들이 순식간에 원화를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환전하면, 외환시장 패닉과 원화 가치 폭락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또 하나, 우리 나라는 아직 휴전 중인 국가라는 점도 이런 경향에 한 몫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무력화되고, 한국은행의 금리인상도 자본 유출을 막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터키처럼 자국 화폐 불신이 만연한 국가들은 이미 이런 현상을 겪고 있다.
통화주권과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
통화주권 상실은 곧 경제주권의 종말을 의미한다. 미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전 세계 거래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제재 대상국의 자금을 즉시 동결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정부의 재정·통화 정책이 무력화되고, 경제 위기시 독자적 대응이 불가능해진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 같은 적대 세력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제재를 우회하거나, 사이버 공격으로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 안보의 최전선이 군사 영역에서 디지털 금융 영역으로 이동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국채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인플레이션 폭탄
현재 주요 스테이블코인들이 미국 국채를 주요 담보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시한폭탄과 같다. 미국이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무한정 발행하면, 이를 담보로 한 스테이블코인도 무한 증식한다. 전 세계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일상 화폐로 사용하게 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즉각적으로 전 세계로 전파된다. 1970년대 오일 쇼크를 뛰어넘는 글로벌 동시다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으며, 개별 국가는 이를 방어할 수단이 없다.
은행 예치 스테이블코인의 환상
“100% 은행 예치”를 내세우는 스테이블코인도 안전하지 않다. 한국의 은행 지급준비율은 약 7%에 불과하다. 이는 두 가지 치명적 함의를 갖는다. 첫째, 대규모 인출요구(뱅크런) 시 은행도 지급불능에 빠진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사태가 이를 증명했다. 둘째, 지준금을 제외한 93%의 자금이 대출로 시중에 유출되어 통화승수효과를 일으킨다. 스테이블코인 1조원이 예치되면 실제로는 10조원 이상의 통화가 창출되어 강력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한다. 안전자산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통화 팽창의 뇌관인 셈이다.
독이 든 사과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스테이블코인은 세 가지 측면에서 ‘독이 든 사과’다. 첫째, 편의성이라는 달콤함으로 국가 통화 체계를 서서히 잠식한다. 둘째, 민간기업이 중앙은행 역할을 대체하며 공공재인 화폐를 사유화한다. 셋째, 글로벌 금융 위기시 전염 속도와 파괴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킨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국가보다 강력한 초국가적 통화 권력이 탄생할 위험이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불가피성과 대비책
그럼에도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피할 수 없다. 방어적 차원에서라도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한 디지털 원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충분한 안전장치 없이는 부메랑이 될 뿐이다. 첫째, 자본 유출 모니터링과 제한 메커니즘을 내장해야 한다. 둘째, 국제공조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규제표준을 확립해야 한다. 셋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의 연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넷째, 금융 안정성 스트레스 테스트를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금융 리터러시 교육으로 국민들의 인식을 높여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이 거대한 실험이 금융 혁신의 새 장을 열지, 아니면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판도라 상자가 될지는 우리의 준비와 대응에 달려있다. 기술 혁신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국가 경제 주권을 수호하는 지혜로운 균형점을 찾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이 직면한 시대적 과제다.
■추원식 변호사 △서울대 법과대학 △제36회 사법시험 합격 △사업연수원 26기 △(전)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미국 뉴욕주 변호사(2005년) △(전)법무법인 광장 파트너 변호사 △(현)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





